와인 평론가 열전
핵심
삶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잔을 마셔 보라. — 파울로 코엘류(Paulo Coelho, 1947~)
와인에는 점수가 붙습니다. 다른 어떤 식품에도 이만큼 촘촘한 점수 체계는 없습니다.
이 강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핵심
누가, 왜,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게 됐는가. 그리고 그 점수가 세계 와인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 미리 밝혀 둘 것. 이 강은 평가 체계라는 제도를 다룹니다. 특정 인물의 인격이나 취향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분야에서 벌어진 논쟁도 대부분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시장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그 관점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왜 미국식 100점제가 세계 표준이 됐나요?
그전에는 유럽식 20점제와 정성적 서술이 표준이었습니다.
| 유럽식 (전통) | 미국식 (1970년대 이후) | |
|---|---|---|
| 만점 | 20점 | 100점 |
| 함께 붙는 것 | 정성적 분석 서술 | 점수 위주 |
| 강점 | 뉘앙스가 살아 있다 | 직관적이다 |
| 약점 | 유럽 밖 소비자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 뉘앙스가 눌린다 |
전환의 이유는 시장에 있었습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 와인 소비 시장이 되고, 뒤이어 아시아가 새로운 소비 시장으로 부각되면서, 100점 만점에 익숙한 소비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88점」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학교 성적표를 받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압니다. 이 직관성이 100점제를 표준으로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파커는 무엇을 만들었나요?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 1947~) 는 100점 만점 평가 시스템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했나
| 시기 | 무슨 일이 |
|---|---|
| 학부 | 역사 전공, 예술사 부전공 |
| 대학생 시절 | 여자친구가 알자스로 유학을 가, 방학에 놀러 갔다가 와인에 반한다 |
| 1973년 | 법전문대학원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한다 |
| 1978년 | 격월간 와인 잡지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 창간 |
| 1984년 | 변호사업을 떠나 와인 평가를 전업으로 삼는다 |
| 2006년 | 평가자들을 대거 영입해 전 세계 주요 산지를 평가하게 한다 |
| 2012년 | 본인은 일선에서 물러나 주로 후견인 역할 |
창간의 동기가 이 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소비자 권익 보호 운동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그는 두 가지를 알게 됩니다.
- 유럽의 유명 평론가 일부가 자신이 평가하는 와이너리의 사외이사였다
- 와인 잡지들이 와인 광고를 싣고 있었다
그러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광고 없이 구독료만으로 운영하는 평가지를 만들어 배포합니다. 처음에는 잡지도 아니었습니다. 구독자에게 격월로 보내는 서신 형태였습니다.
핵심
이해 상충을 차단하는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평론이라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만 신뢰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왜 유명해졌나
1982년 보르도 빈티지가 분기점이었습니다.
- 일부 유명 평론가들은 1982년 빈티지를 「그냥 평범한 빈티지」 라고 평가했습니다
- 그는 「1961년 이래 최고의 빈티지」 라고 평가했습니다
- 결과적으로 그의 평가가 옳았다는 판정이 났습니다
유료 구독자 수가 급증했고, 그는 전업 평론가가 됩니다. 마침 미국에서 와인 붐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습니다.
100점제는 실제로는 몇 점 만점인가요?
여기가 실무에서 가장 유용한 지식입니다.
| 구간 | 뜻 |
|---|---|
| 96~100 | Extraordinary — 예외적인 |
| 90~95 | Outstanding — 아주 뛰어난 |
| 80~89 | Barely above average to very good — 평균 이상이거나 아주 좋은 |
| 70~79 | Average — 평균 |
| 60~69 | Below average — 평균 아래 |
| 50~59 | Unacceptable — 수용 불가 |
70점 아래는 「마시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표의 맨 아래를 보십시오. 바닥이 0점이 아니라 50점입니다.
핵심
기본으로 50점을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그러니 사실상 50점 만점 체계입니다.
이 한 문장을 알고 나면 「88점 와인」의 위치가 달라 보입니다. 100점 만점의 88%가 아니라, 50점 만점에서 38점입니다.
제임스 서클링의 방식은 무엇이 다른가요?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1958~) 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의 총괄 편집장과 유럽 편집장을 지낸 뒤 2010년 독립해 자신의 평가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로
| 시기 | 무슨 일이 |
|---|---|
| 학부·대학원 | 정치학과 저널리즘 전공 |
| 1981년 | 구독자 800명 규모이던 『와인 스펙테이터』에 23세로 입사 |
| 1984년 | 처음 유럽을 방문해 이탈리아 주요 와이너리를 돌아본다 |
| 1985년 | 파리에 유럽 사무소를 설립하는 임무를 맡는다 |
| 1987년 | 런던으로 옮겨 11년 거주 |
| 1998년 |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 |
| 2010년 | 『와인 스펙테이터』를 떠나 독립 |
시가 잡지 『시가 아피시오나도』의 유럽 편집장도 지내, 와인 평론가이자 시가 평론가이기도 합니다.
배점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같은 100점제인데 배점 구조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공개했습니다.
| 항목 | 배점 |
|---|---|
| 색(Color) | 15점 |
| 아로마(향) | 25점 |
| 바디감과 구조감 | 25점 |
| 전체적인 인상 | 35점 |
| 합계 | 100점 |
전체 인상에 35점이 걸려 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평가자가 향에 중점을 두는 것과 달리, 입안에서 느껴지는 과일의 응축도·탄닌·알코올·산도의 강도와 지속성, 그리고 균형감에 더 무게를 둔다고 말합니다. 특히 삼키고 난 뒤의 여운을 중요하게 봅니다.
알아두기
여운을 초로 재는 방법은 교양 과정에서 다뤘습니다. → 교양 2강 · 체계적인 와인 테이스팅
그의 평가관은 이렇습니다.
핵심
「와인은 사람과 같아서 세상에 같은 것이 없다. 과학적 분석보다 감성적으로 얼마나 와닿느냐에 무게를 둔다.」 「와인은 음악이나 문학, 사랑과 같아서 정서적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좋은 와인이다.」
그런데 그는 90점 아래를 잘 매기지 않습니다
독립 후 그가 매기는 점수는 대개 90점 이상이거나 아예 점수를 주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 구간 | 그의 설명 |
|---|---|
| 95점 이상 | 반드시 병째 사서 마실 만하다 |
| 90~94점 |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은, 뛰어난 와인 |
| 88점 아래 | 마셔도 되나 조심하라 — 자신은 추천하지 않는다 |
오크통에 있는 아직 병입 전 와인에는 90~91, 93~94처럼 범위로 점수를 줍니다.
핵심
그래서 그의 100점제는 실질적으로 10점 만점 체계입니다.
두 사람을 한 표로
| 로버트 파커 | 제임스 서클링 | |
|---|---|---|
| 출생 | 1947 | 1958 |
| 시작 | 1978년 『와인 애드버킷』 창간 | 1981년 『와인 스펙테이터』 입사 |
| 만점 | 100점 (실질 50점) | 100점 (실질 10점) |
| 「아주 특별한」 기준 | 96점 이상 | 95점 이상 |
| 주력 산지 | 보르도 · 론 | 보르도 · 이탈리아 |
| 무엇에 무게를 두나 | 색·향·풍미·여운·전체 인상 + 장기 숙성력 | 풍미·여운·전체 인상 |
같은 「100점」이 두 사람에게 다른 의미입니다. 이것이 점수를 볼 때 「누가 준 점수인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집필자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이렇게 봅니다. 둘 다 미국에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하고 세계적으로 양조 기법이 크게 바뀌던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시기적으로 운이 따랐다고도, 시대 흐름을 미리 읽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20점제는 누가 쓰나요?
유럽 전통의 체계이고, 지금도 유력한 평가자와 매체가 씁니다.
| 평가자 · 매체 | 체계 | 특징 |
|---|---|---|
|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 20점제 | 마스터 오브 와인(MW). 『옥스퍼드 와인 대사전(The Oxford Companion to Wine)』 편집자로 알려져 있다 |
| 디캔터(Decanter) | 20점제 및 100점제 | 영국의 대표 와인 매체. 시상 제도(DWWA)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 휴 존슨(Hugh Johnson) | 서술 중심 | 『세계 와인 지도(The World Atlas of Wine)』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
| 마이클 브로드벤트(Michael Broadbent) | 별 표시 | 경매와 올드 빈티지 시음 노트 계열로 알려져 있다 |
20점제의 컷라인을 알아 두면 유용합니다.
핵심
디캔터는 13점부터, 잰시스 로빈슨은 15점부터 추천 구간으로 봅니다. 별이나 글라스 표시 체계는 하나라도 받았으면 마실 만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요 전문 매체로는 『와인 애드버킷』 『와인 스펙테이터』 『디캔터』, 이탈리아의 『감베로 로소』, 프랑스의 『라 르뷔 뒤 뱅 드 프랑스』 등이 있습니다.
알아두기
평가자별 점수 구간 조견표와 실전에서 점수를 읽는 법은 별도의 글에서 정리했습니다. → 와인 점수 100점 만점은 무엇을 재는가
「파커화 현상」이란 무엇인가요?
이 강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 이야기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사람 — 에밀 페노
에밀 페노(Émile Peynaud, 1912~2004) 는 프랑스 보르도 대학 교수로, 「현대 양조의 아버지」 라 불립니다.
그가 주창하고 보급한 것은 이렇습니다.
| 무엇을 | 결과 |
|---|---|
| 최대한 늦게 수확하라 | 과일의 풍미와 당도가 높아진다 |
|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젖산 발효 | 탄닌감이 부드러워진다 |
그전까지는 달랐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확기의 비 피해를 우려해 완숙 전에 따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나
파커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오크향과 과일향이 풍부하고, 강하고 진하면서도 균형이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페노가 만든 새로운 양조 흐름이 정확히 그런 와인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시장이 반응합니다.
평론가의 점수 → 가격과 판매량에 직결
↓
생산자가 점수를 잘 받는 스타일로 맞춘다
↓
세계 와인이 서로 비슷해진다 ← 「파커화(Parkerization)」
결과는 다양성의 축소였습니다. 그래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요?
집필자의 판단이 명확합니다.
핵심
「엄밀히 보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와 유사한 입맛을 가졌거나 그를 신봉하는 소비자의 시장 규모, 그리고 그 시장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생산자들의 문제다.」
이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평론가는 자기 취향을 공개했을 뿐이고, 시장이 그 취향을 향해 움직인 것입니다. 개인을 비난해서는 이 구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내추럴 와인 운동입니다. 과일향과 오크향이 강한 와인에 고점이 몰리면서 생긴 동질화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 내추럴 와인과 지속가능 농법
교양 과정 마지막에서 본 「와인 산업이 마주한 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 지역적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더 큰 시장을 위한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 → 교양 4강 · 와인의 역사
그래서 점수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집필자의 실전 규칙입니다.
| 상황 | 규칙 |
|---|---|
| 100점제 | 80점을 컷라인으로 기억한다. 85점 이상이면 추천 구간 (척도 자체의 하한은 70점이지만, 실제로 시장에 나오는 와인은 대개 80점 위에 몰려 있어 실전 기준선이 다릅니다) |
| 20점제 | 디캔터 13점, 로빈슨 15점부터 |
| 별 · 글라스 | 하나라도 받았으면 마실 만하다 |
| 아예 외우기 싫다면 | 평론가가 점수를 매긴 와인이면 80~90% 확률로 마실 만하다 |
마지막 줄이 가장 실용적입니다. 평가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1차 필터입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 점수는 그 평가자의 취향에 대한 정보이지, 나의 취향에 대한 정보가 아닙니다
- 같은 와인도 평가 연도에 따라 점수가 바뀝니다. 두 사람의 1982년 보르도 재평가에서도 대개 3점 이내의 편차가 관측됐습니다. 병의 상태 때문인지 그날의 컨디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평가되지 않은 와인이 나쁜 와인은 아닙니다. 평가는 시장성이 큰 지역에 집중됩니다. 소외된 산지가 평가에서 빠지는 것은 품질과 무관합니다
마지막 항목이 와인소풍이 다양성과 덜 알려진 산지를 다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나의 기준은 어떻게 만드나요?
집필자의 권유가 이 강의 결론입니다.
핵심
「이들처럼 자신만의 테이스팅 기준을 정해 마시는 와인마다 평가해 보고, 이들의 평가와 비교해 보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자신만의 테이스팅 노트를 기록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실용적인 효과가 하나 붙습니다.
핵심
둘 중 누구의 평가가 자기 입맛과 더 비슷한지 알아 두면, 마셔 보지 않은 와인을 고를 때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점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취향이 비슷한 평가자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점수를 쓰는 가장 성숙한 방법입니다.
테이스팅 노트를 어떤 항목으로 쓸지는 교양 과정 2강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 교양 2강 · 체계적인 와인 테이스팅
그리고 한국에는 한국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소비자 평가 프로젝트입니다. 전문가 순위와 일반 소비자 순위가 30회 내내 20~30%만 겹쳤다는 관측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 와인 컨슈머 리포트(WCR) →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어떻게 진행되나
이 강의 요점
- 100점제는 직관성 때문에 표준이 됐다. 그전에는 유럽식 20점제 + 정성 서술이 표준이었고, 미국·아시아 소비자에게는 의미 파악이 어려웠다.
- 『와인 애드버킷』의 출발점은 이해 상충의 차단이었다. 평론가가 와이너리의 사외이사이고 잡지가 와인 광고를 싣는 구조에서는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광고 없이 구독료만으로 운영했다.
- 같은 100점이 사람마다 다르다. 파커는 50점부터 시작하니 실질 50점제, 서클링은 90점 미만을 거의 매기지 않으니 실질 10점제다. 누가 준 점수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 「파커화 현상」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시장 구조의 문제다. 에밀 페노가 만든 양조 흐름과 평론가의 취향, 그리고 그 취향을 따라간 시장이 함께 만든 결과다.
- 점수는 평가자의 취향에 대한 정보이지 나의 취향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나와 입맛이 비슷한 평가자를 찾고, 자신만의 테이스팅 노트를 쓰는 것이 점수를 쓰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다.
이어서 볼 것
- 와인 점수 100점 만점은 무엇을 재는가 →
-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어떻게 진행되나 →
- 내추럴 와인과 지속가능 농법 →
- 교양 2강 · 체계적인 와인 테이스팅 →
- 와인 컨슈머 리포트(WCR) →
만 19세 미만은 주류를 구매할 수 없습니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칩니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