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축제 이야기

핵심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매일이 축제다. For the wise man, every day is a festival. — 플루타르코스(AD 46~120)

이 강은 문화사입니다. 술을 권하는 강이 아닙니다.

축제를 다루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핵심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연극·희극·비극·퍼레이드·카니발이 전부 와인 축제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비극」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왜 「염소의 노래」인지, 왜 그리스의 극장이 신전 앞에 있는지 — 이 강을 마치면 답이 됩니다.

주의

⚠️ 미리 밝혀 둘 것. 이 강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관습이 나옵니다.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이며, 어떤 형태로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미성년자의 음주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축제는 왜 생겼나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가 축제입니다.

우리는 규모가 작으면 잔치, 크면 축제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잔치도 작은 축제이고, 우리는 일상적으로 축제 속에 삽니다.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축제의 수와 규모, 그 격조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기원은 대체로 이렇게 봅니다.

단계 무엇을 위한 축제였나
원시 농경 사회 봄의 풍요 기원제 · 가을의 추수 감사제
고대 국가 등장 이후 전쟁의 승리 · 왕의 탄생 기념
오늘날 예술 · 먹거리를 주제로 한 관광 자원

축제의 규모가 문화의 두께를 말해 주는 예로 필리핀이 자주 인용됩니다. 마을 단위까지 합치면 연간 4만 2,000여 개의 축제가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축제와 술은 왜 붙어 있나요?

어원에서 답이 나옵니다.

핵심

「페스티벌(Festival)」의 어원은 「피스트(Feast)」에서 왔다고 봅니다. 피스트는 연회 · 향연, 즉 다수가 모여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 음료가 빠질 수 없었고, 인류 역사와 가장 오래 함께한 음료가 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와인 자체 또는 와인의 신을 숭배하는 종교적 축제가 생겨났고, 디오니소스는 축제의 신이라고까지 불리게 됩니다.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축제는 무엇인가요?

이집트의 오시리스 축제입니다.

항목 내용
누구를 기리나 오시리스(Osiris) — 풍요의 신이자 죽은 자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부활의 신. 이집트 최초의 왕
언제부터 BC 6000년경부터 신화와 숭배 의식이 이어지다가, BC 3000년경 축제로 정식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언제까지 로마에 의해 이집트 마지막 왕조(프톨레마이오스)가 멸망하는 BC 30년까지
지속 기간 약 3,000년

3,000년 동안 이어진 축제입니다. 인류가 만든 어떤 제도보다도 오래갔습니다.

그리고 앞 강에서 본 대로, 오시리스 전설이 그리스로 넘어가 그리스 문명과 융합되면서 디오니소스 신화가 탄생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류 이론입니다. 축제도 함께 건너갔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몇 개였나요?

넷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겨울부터 봄까지 거의 매달 하나씩 열렸습니다.

순서 축제 시기 성격
1 시골 디오니시아 (Rural Dionysia) 12~1월 (동지 전후) 겨울에 포도나무의 번성을 기원
2 레나이아 (Lenaia) 1~2월 소규모 · 지역 주민 중심
3 안테스테리아 (Anthesteria) 2~3월 봄의 시작과 전년도 와인의 숙성을 기념
4 도시 디오니시아 (City Dionysia) 3~4월 (춘분 전후) 가장 크고 화려하다. 겨울의 끝과 그해의 풍작을 빈다

이 배치가 우연이 아닙니다. 양조가 끝나는 시점, 숙성이 진행되는 시점, 새 와인을 여는 시점이 각각의 축제와 맞물립니다. 축제가 곧 농사 달력이었습니다.

시골 디오니시아 — 축제의 원형

아테네와 테베의 국경지대 아티카(Attica)의 마을들에서 열렸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양조가 다 끝나고 숙성 단계에 있을 때입니다.

진행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1. 퍼레이드 — 바구니, 빵 또는 곡물죽, 제물, 물 항아리, 와인 항아리를 든 소녀들이 차례로 서서 행진
  2. 제사 — 디오니소스에게
  3. 공연12~5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합창과 춤을 선보인다

세 번째가 오늘날의 뮤지컬에 해당하는 형태입니다. 나중에는 일부 마을에서 비극·희극 같은 연극 공연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이웃 마을의 축제를 서로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축제를 통해 지역 간 교류와 관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의 지역 축제와 구조가 같습니다.

도시 디오니시아 — 연극이 태어난 자리

그레이트 디오니시아(the Great Dionysia) 라고도 불립니다. BC 6세기 피시스트라토스 시절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번성기에는 모든 아테네 시민, 아테네 거주 외국인, 그리스 각 도시의 대표와 방문객이 참여한 가운데 6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일차 무엇을
1일 행진 — 디오니소스 상을 앞세우고 각종 공물을 든 소녀들과 화려한 의상의 합창단이 디오니소스 극장까지 행진. 도착하면 황소를 제물로 제사
2~4일 연극 경연 3일
5~6일 합창 경연 2일

이 축제의 꽃은 연극 경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가 흥미롭습니다.

연도 무엇이 도입됐나
BC 534년경 축제 창설. 비극만 도입. 시인 3명의 비극 3편 + 같은 작가의 사티로스극
BC 486년 약 48년 뒤 희극 도입. 작가 5명이 경연

사티로스(Satyr) 는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반인반수의 정령입니다. 장난이 심하고 주색을 밝히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축제 때 배우들이 그런 복장을 하고 공연했기에 사티로스극이라고 부릅니다.

구조를 보십시오.

핵심

비극 → 사티로스극(풍자와 익살) 으로 마무리합니다. 비극으로 슬픔에 젖게 한 뒤, 익살로 웃기며 끝내는 것 —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설계입니다.

「비극」의 어원이 왜 「염소의 노래」인가요?

비극 경연의 상품 때문입니다.

추첨으로 뽑힌 심사관들이 평가해 최우수작을 쓴 작가에게 염소를 주었습니다. 염소는 디오니소스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염소는 포도나무 잎을 뜯어 먹습니다. 포도나무와는 적대 관계인 셈입니다. 집필자는 여기에 「디오니소스에게 염소를 잘 다스려 달라는 염원이 담긴 것 같다」 는 해석을 붙입니다.

그래서 비극(tragedy)의 어원이 「염소의 노래(goat song)」에서 유래했다고 전합니다.

레나이아 — 작지만 이름이 흥미로운 축제

1~2월에 아테네와 이오니아 지역에서 열린 소규모 축제입니다.

이름의 유래가 둘로 갈립니다.

후보
레노스(lenos) 와인 압착을 뜻하는 말
마이나데스(Maenades) 디오니소스의 여성 숭배자들

마이나데스는 신화에서 도취된 상태로 산과 들을 쏘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며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여신들에서 유래했고, 현실의 제례에서는 열광적으로 춤추는 여성 숭배자들을 가리켰습니다.

이 축제는 도시 디오니시아와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BC 442년에 희극이 먼저 도입되고, 10년 뒤인 BC 432년에 비극이 도입됐습니다. 희극 5편 · 비극 2편이 경연했고, 사티로스극과 합창 경연은 없었습니다. 참가자도 지역 주민과 지역 거주 외국인으로 한정됐습니다.

안테스테리아 — 새 와인을 여는 축제

2~3월 중, 3월 대보름 이전에 3일 동안 열렸습니다. 이름은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 에서 왔습니다. 봄꽃 축제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분명합니다. 봄의 시작과, 전년도에 만든 와인이 잘 숙성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 기간에는 겨울 동안 소비가 금지되었던 농산물의 소비가 허용됐습니다.

일차 무엇을
1일 새 와인 항아리를 열어 디오니소스에게 헌주. 노예까지 참여해 함께 마셨다. 집 안을 봄꽃으로 장식
2일 무리 지어 이 집 저 집 다니고, 조상의 무덤에 헌주한다
3일 항아리 축제의 날 · 죽은 이를 추모하는 날. 온 가족이 곡물죽을 해 지기 전에 함께 먹고, 악령을 쫓는 의식을 치른다

둘째 날의 놀이가 재미있습니다. 공기를 채운 와인 가죽 부대를 극장 중앙에 모아 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은 다음, 그 위에서 뛰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보며 웃고 놀았다고 합니다. 집필자는 이것을 보고 보령 머드 축제트램펄린의 유래를 떠올렸다고 적었습니다.

주의

⚠️ 오늘날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관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날에 열린 「와인 빨리 마시기 대회」에는 어린아이부터 참가가 가능했다고 전합니다. 당시의 규범과 오늘의 규범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기록일 뿐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미성년자의 음주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술을 빨리 마시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권할 수 없습니다.

셋째 날 축제가 끝날 때, 계속 와인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 축제의 종료를 알렸다고 합니다.

핵심

「죽음의 여신 케레스여 가라, 안테스테리아 축제는 끝났다!」

끝을 선언하는 문장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축제에는 시작만큼 끝이 중요했습니다.

로마의 바카날리아는 왜 금지됐나요?

바카날리아(Bacchanalia) 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파된, 바쿠스를 기리는 축제입니다.

어떻게 전해졌나

BC 200년경,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이 두 경로로 로마에 들어옵니다.

  1. 그리스 식민지였던 남부 이탈리아
  2. 로마 북쪽의 에트루리아 (오늘날 토스카나 · 움브리아 · 라치오)

로마 안에서 처음 자리 잡은 곳은 티베르강 하류 아벤티노 언덕 기슭의 삼림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의 성소가 있었고(로마에서는 스티물라라 불렀습니다), 로마 토착 신인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 의 성전도 있었습니다. 평민 거주지이자 다민족 거주지였습니다.

어떻게 변질됐나

도입 초기에는 규모가 아주 작았습니다.

초기 (아벤티노) 북쪽 에트루리아식
참가 여성만 남녀 모두
시간
횟수 연 3일
성격 제례 와인 + 제사 + 점술 + 축제 결합

시간이 흐르며 두 방식이 결합됩니다. 한 달에 5번, 밤에, 남녀노소와 모든 계층에게 개방되는 형태로 커집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깁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의 바카날리아는 성폭력과 성 문란 사태를 야기했고, 의식에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입교자를 배신자로 몰아 제거하기까지 했습니다. 집필자의 표현으로는 「사이비 종교화되어 사회 규범을 해치는 상황」 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화된 계기는 초기에 입교했다가 탈퇴한 한 여성의 고발이었습니다. 고발을 받은 집정관이 약 7,000명을 색출·체포해 대부분 처형했습니다.

이 기록은 로마 역사학자 리비우스(Livy, BC 64/59~AD 12/17) 의 저술로 남아 있습니다.

주의

⚠️ 다만 리비우스는 BC 1세기 사람입니다. 바카날리아가 로마에서 융성했던 시기와 약 200년의 차이가 있어, 후대 학자들이 그의 기술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합니다.

금지가 아니라 규제였다 —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BC 186년, 집정관은 축제를 완전히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원로원에서 법을 제정해 규모·조직·사제 제도를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규제 내용
기존 숭배 장소와 지부는 해체
모임은 남자 2명 · 여자 3명까지만
그것도 사전에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야 함
남자가 바쿠스의 사제직을 맡는 것 금지
위반 시 사형

왜 금지가 아니라 규제였을까. 집필자는 여러 해석을 나란히 놓습니다.

  1. 오랜 세월 민간에 정착한 것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지하로 들어가 더 큰 문제가 된다 — 양지로 끌어내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다는 해석
  2. 2차 포에니 전쟁(BC 218~203) 직후의 정치 상황 — 땅에 떨어진 지배 세력의 권위를 되찾고, 원로원이 시민과 종교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음을 보이려 했다는 해석
  3. 가부장적 로마 가족 제도와 어긋났기 때문 — 원래 여성 위주로 진행되던 축제였다
  4. 노예와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해 혁명 세력화하는 것을 집권층이 두려워했기 때문

어느 해석을 택하든, 이것이 「축제를 통제하려 한 최초의 국가적 시도」 중 하나라는 사실은 남습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됐나

규제 이후 변경된 축제는 리베랄리아(Liberalia) 로 통합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항목 내용
누구를 기리나 리베르(Liber) — 번식과 성장을 주관하는 전원의 신, 그리고 그 여성신 리베라(Libera)
언제 매년 3월 17일
성격 축제 + 성인식 — 15~16세 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목에 두르던 부적을 떼고 어른의 토가를 입었다

리베르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같은 신이고, 그 별칭이 우리에게 익숙한 바쿠스입니다. 리베르 파테르 = 「자유로운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신 배치도 흥미롭습니다.

언덕 누구의 수호신
아벤티노 언덕 케레스(데메테르) · 리베르 · 리베라(페르세포네) 평민
카피톨리노 언덕 유피테르(제우스) · 유노(헤라) · 미네르바(아테나) 귀족

귀족의 신과 평민의 신이 따로 있었고, 와인의 신은 평민 쪽에 있었습니다.

바쿠스·리베르·디오니소스는 후기 공화정(BC 133년 이후)에서 동일한 신으로 추앙되었고, 이들에 대한 숭배는 로마 초기 황제 시대(BC 27~AD 284)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AD 400년경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는 카니발과 같은 거리 행진 형태로 남아 있었다고 전합니다.

핵심

오늘날의 카니발이 여기서 왔습니다.

축제는 예술로 어떻게 남았나요?

바카날리아의 장면은 벽화와 석관 부조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회화의 주제가 됩니다.

기록에 남은 대표적 작가로 티치아노루벤스가 있습니다. 야외 풍경을 배경으로 흥청이는 파티 장면을 그린 계열입니다.

핵심

의식이 그림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축제는 사라져도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오늘날의 와인 축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성격이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유형 성격
수확제 계열 그해 수확과 양조를 기념. 고대 축제의 직계 유럽 각지의 마을 단위 수확 축제
출시일 계열 특정 와인의 출시일을 정해 두고 함께 여는 방식 보졸레 누보
관광·미식 계열 지역 홍보와 미식 관광이 목적 호주 누사 푸드 & 와인 페스티벌 등

아르메니아 아레니의 와인 축제는 상징적입니다. 앞 강에서 본,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발견된 바로 그곳입니다. 이 축제에서는 포도 밟기가 재현됩니다. 8,000년 전의 자리에서 그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보졸레 누보 — 출시일이 규정으로 정해진 드문 사례

프랑스 보졸레 지역의 햇와인입니다.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항목 내용
출시일 11월 셋째 주 목요일 — 규정으로 정해져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시된다
양조 반탄산 침용법(carbonic maceration)을 쓴다. 통 아래쪽은 일반 발효, 위쪽은 산소 없이 발효
숙성 부르고뉴에 속하지만 오크 숙성을 하지 않는다
역산하면 11월 셋째 목요일 출시 → 10월 말 완제품 → 9월 말~10월 초 수확

출시일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것이 현대적 「축제 만들기」의 교과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본 대로 오늘날의 축제는 일부러 고안되기도 합니다. 날짜를 못 박고, 전 세계가 같은 날 열게 하고, 그 자체를 이벤트로 만든 것입니다.

옥토버페스트는 와인 축제가 아닙니다

자주 함께 언급되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옥토버페스트 고대 와인 축제
무엇의 축제인가 맥주 와인
기원 1810년 바이에른 왕세자 루트비히와 테레제의 결혼 축하 행사 농경·종교 제례
성격 왕실 행사에서 시작해 시민 축제로 신을 기리는 의례에서 시작

대비해서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옥토버페스트는 근대에 왕실 행사에서 출발했고, 디오니소스 축제와 바카날리아는 고대의 종교 의례에서 출발했습니다. 「술 축제」라는 한 단어로 묶으면 그 차이가 사라집니다.

이 강의 요점

  1.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축제는 이집트의 오시리스 축제다. BC 3000년경 자리를 잡아 약 3,000년 이어졌고, 이것이 그리스로 넘어가 디오니소스 축제가 됐다.
  2. 고대 아테네에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넷 있었다 — 시골 디오니시아 · 레나이아 · 안테스테리아 · 도시 디오니시아. 한겨울부터 봄까지 거의 매달 열렸고, 배치가 양조·숙성 일정과 맞물린다.
  3. 연극이 여기서 태어났다. BC 534년경 비극이 먼저, 48년 뒤인 BC 486년에 희극이 도입됐다. 「비극(tragedy)」의 어원은 상품으로 준 염소에서 온 「염소의 노래」 다.
  4. 로마의 바카날리아는 BC 186년에 금지가 아니라 규제됐다. 모임 인원 제한, 원로원 사전 승인, 위반 시 사형. 국가가 축제를 통제하려 한 이른 사례다.
  5. 오늘날의 카니발은 바카날리아의 후예다. 리베랄리아로 통합된 뒤, AD 400년경에는 거리 행진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이어서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