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승계는 한국 기업의 오래된 숙제입니다. 창업자가 물러날 때 회사가 함께 흔들리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는 1385년에 시작한 와인 가문이 있습니다. 마르케지 안티노리(Marchesi Antinori)입니다. 지금은 26대째입니다. 이 글은 그 가문의 와인을 소개하는 글이 아닙니다. 640년을 버틴 조직이 승계와 지배구조를 어떻게 설계했는가를 공개된 자료로 확인해 정리한 기록입니다.
와인소풍은 안티노리 와인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 판매 목적은 없습니다.
안티노리는 어떤 회사입니까?
1385년, 조반니 디 피에로 안티노리가 피렌체 와인상 길드(Arte Fiorentina dei Vinattieri)에 가입한 것이 시작입니다. 안티노리 공식 기록이 이 해를 창업 시점으로 잡습니다.
| 항목 | 내용 | 확인 |
|---|---|---|
| 창업 | 1385년 (피렌체 와인상 길드 가입) | 안티노리 공식 |
| 현재 세대 | 26대 | 안티노리 공식 · Wine Spectator |
| 현 회장 | 알비에라 안티노리 (1966년생), 2017년 취임 · 가문 최초의 여성 회장 | Forbes · Wine Spectator |
| 25대 | 피에로 안티노리 — 티냐넬로·솔라이아를 만든 인물 | Wine Spectator |
| 가족 신탁 | 2012년 12월 설립, 회사를 신탁 소유로 이전 | Wine Spectator |
| 해외 거점 | 미국 안티카 나파밸리(1993, 아틀라스 피크), 루마니아(2009), 칠레, 헝가리, 몰타 등 | Wine Spectator · Decanter |
원고 초안에는 「27대손」으로 적혀 있었으나, 안티노리 공식 자료와 Wine Spectator 모두 알비에라 회장 세대를 26대로 기록합니다. 이 글은 26대로 바로잡았습니다.
600년 넘게 이어진 가업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알비에라 회장은 기술적 우위가 비결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술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회장이 든 네 가지는 이렇습니다.
| # | 원칙 | 뜻 |
|---|---|---|
| 1 | 땅에 대한 존경 | 땅이 우리가 농부임을 알게 한다. 모든 생산물의 원천이다 |
| 2 | 소유가 아니라 책임 | 땅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발해 부가가치를 낳을 책임을 진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도 같다 |
| 3 | 재배와 양조에 대한 열정 | 좋은 포도가 있어야 좋은 와인이 나온다 |
| 4 | 달팽이식 접근 | 새 일을 시작할 때 멀리 발자국을 떼지 않는다. 작게 한 발자국씩 간다 |
네 번째가 경영자에게 가장 낯선 대목입니다.
「새로운 일에 투자하거나 시작할 때 너무 멀리 발자국을 떼지 말고 조심스럽게 작게 한 발자국씩 접근한다. 이런 달팽이식 접근법이 매우 제한적이고 느린 것 같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보면 가장 탈 없고 안전한 방법이다.」
빠르게 키운 포도나무보다 자연의 흐름대로 자란 포도가 더 나은 와인이 된다는 관찰을, 사업의 모든 영역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설명입니다.
가문의 문장에는 1400년대부터 내려온 라틴어 문구가 있습니다. 「Te duce proficio」 — 「당신의 안내를 따라 나는 번창한다」로 옮깁니다. Wine Spectator는 이를 「탁월함을 향한 추구」로 풀었고, 피에로 안티노리 본인은 회고록에서 **「배우고, 자라고, 나아진다」**로 요약했습니다.
승계는 어떻게 설계했습니까?
핵심은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피에로 안티노리에게는 딸이 셋 있었습니다. 알비에라, 알레그라, 알레시아입니다. 1980년대 초 그는 후계자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이 뒤에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큰딸 알비에라가 고등학교를 마친 1986년, 아버지는 대학 진학 대신 수확 현장을 권합니다. 알비에라는 움브리아의 카스텔로 델라 살라에서 포도를 땄습니다. 회장의 회고는 이렇습니다.
「와인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특정 순간은 없었다. 그 수확이 끝나고 아버지와 여행하며 내가 한 일을 설명했다. 이듬해 봄에는 새로 심을 포도밭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또 수확이 있었다.」
동생들도 뒤따랐습니다. 알레그라는 미국 와이너리에서 접객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알레시아는 밀라노에서 포도재배·양조학을 전공했습니다. 세 딸 모두 첫 자리가 「임원」이 아니었습니다.
2017년 알비에라가 회장에 올랐습니다. 알레그라와 알레시아는 부회장입니다. 일상 경영은 가족이 아닌 CEO 렌초 코타렐라가 맡습니다.
승계 기준 네 가지
회장이 밝힌 기준은 단순합니다.
| # | 기준 |
|---|---|
| 1 | 일과 가족을 분리한다 — 가족의 일과 비즈니스는 별개다 |
| 2 |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 — 가족이라고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
| 3 | 요건은 세 가지 — ① 좋아하는가(관심) ② 열정이 있는가 ③ 능력이 있는가 |
| 4 | 결정은 이사회가 한다 — 개인이 정하지 않는다 |
세 번째가 특히 눈에 띕니다. 학력도 경력도 지분도 아닙니다. 관심 · 열정 · 능력 셋뿐입니다.
이사회는 왜 외부인을 가족보다 많게 두었습니까?
2012년 12월, 피에로 안티노리와 세 딸은 가족 신탁을 만들고 회사를 그 신탁 소유로 넘겼습니다. 그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소유자가 아니라 수익자다.」
신탁인은 세 명이며, 회사의 중요한 변경은 이들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신탁인 중에는 패션 기업 페라가모의 페루초 페라가모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족 기업의 중대 결정에 거부권을 갖는 구조입니다.
회장이 설명한 이사회 구성은 이렇습니다.
| 구성 | 인원 |
|---|---|
| 가족 | 3 |
| 신탁인 | 3 |
| 가족이 아닌 대표이사 | 1 |
| 가족 아닌 인원 합계 | 4 |
가족 3명, 외부 4명. 의도적으로 외부가 한 명 더 많게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의 사욕으로 회사가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신탁의 존속 기간도 길게 잡았습니다. 회장 인터뷰는 향후 90년, Wine Spectator 보도는 설정 당시 기준 95년으로 전합니다. 한 세기 가까이 재산을 쪼갤 수 없게 묶은 것입니다. 그 기간이 끝날 때 남을 세대가 신탁을 다시 만들지, 해체할지 결정합니다. 나가려는 가족을 사줄 재원도 미리 적립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사회의 3+3+1 구성은 회장 인터뷰 진술입니다. 신탁인 3인과 신탁 설립 시점(2012년 12월), 비가족 CEO 체제는 Wine Spectator 보도로 별도 확인됩니다.
왜 상장이나 외부 투자를 택하지 않았습니까?
안 해본 것이 아닙니다. 해봤고, 되찾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1980년, 형과 누나가 각자 보유한 3분의 1 지분을 팔겠다고 했습니다. 피에로에게는 살 돈이 없었습니다. 1981년 그는 영국 상장기업 휘트브레드(Whitbread)와 손을 잡습니다. 생산 주체의 과반은 지켰지만, 새로 만든 마케팅 회사의 과반은 상대가 가졌습니다.
곧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1985년 좋은 키안티 포도밭이 매물로 나왔을 때 파트너는 반대했습니다. 투자 회수에 10년이 걸린다는 이유였습니다. 1987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파트너의 조언은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올려라, 그게 주가에 좋다」였습니다.
1991년, 피에로는 개인 자산과 피렌체의 팔라초 안티노리를 담보로 잡고 약 4천만 달러를 마련해 지분을 되사옵니다. 그해 말 회사는 다시 100% 가족 소유가 됩니다. 당시 그의 나이 53세였습니다.
「우리 같은 와인 회사에게 상장은 맞는 길이 아니다. 상장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단기 실적에 신경 쓰게 된다. 애널리스트는 분기 실적을 본다. 우리 사업은 오늘 포도밭을 심으면 10년간 현금흐름이 없다.」
회장 세대의 표현은 더 간명합니다.
「그들은 5년 내 회수가 목표지만, 와인 사업은 최소 15~30년의 긴 안목과 투자가 필요하다.」
되사온 뒤 회사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밝혔습니다. 피에로는 자신이 일한 5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주주에게 배당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익 전액을 회사에 재투자했습니다. 배당 압력이 없으니 10년짜리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회장은 자사 규모의 와인 회사에 맞는 적정 성장률을 연 3~4%로 보고 이를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밝혔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 혁신할 시간을 확보하고, 팀에 적응할 여유를 주며, 재무 부담을 만들지 않는 선이라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 수치는 회장 본인의 진술이며 외부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티냐넬로는 왜 등급을 포기했습니까?
1966년, 28세의 피에로가 회사를 맡았을 때 상황은 나빴습니다. 아르노강이 범람해 본사 지하가 잠겼고, 보존제 사고로 고객이 탈이 났습니다. 총지배인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아버지는 아들을 앞세웠습니다.
그 무렵 토스카나 와인은 고급 산지로서의 평가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소작제가 끝나며 농지가 대량으로 거래됐고, 수확량이 많은 산지오베제 클론이 무분별하게 심겼습니다. 양조장에서는 청소하지 않은 낡은 밤나무통이 쓰였습니다.
피에로는 1968년 보르도의 저명한 양조학자 에밀 페노를 초빙합니다. 조언은 셋이었습니다. 수확량을 줄여라. 키안티에서 화이트 품종을 빼라. 깨끗한 새 오크통에 숙성하라.
문제는 두 번째였습니다. 1967년 제정된 산지 규정은 키안티 클라시코에 화이트 품종을 일정 비율 넣도록 의무화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티냐넬로 밭의 산지오베제로 특별 퀴베를 만들며 화이트 품종을 규정상 최소량만 넣었습니다. 1971년에는 화이트 품종을 완전히 뺐습니다. 온도 제어 발효조를 쓰고, 젖산 발효를 유도하고, 프랑스산 새 오크 바리크에 숙성했습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와인은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남은 선택지는 최하위 등급인 「테이블 와인(vino da tavola)」뿐이었습니다.
| 연도 | 결정 | 결과 |
|---|---|---|
| 1971 | 화이트 품종 제거 | 등급 상실 → 테이블 와인 표기 |
| 1975 | 카베르네 소비뇽 15% · 카베르네 프랑 5% 추가 | 구조와 복합미 확보 |
| 1978 | 솔라이아 밭 카베르네를 별도 병입 | 두 번째 아이콘 탄생 |
| 1992 | 이탈리아가 IGT 등급 신설 | 제도가 현실을 따라옴 |
등급 대신 품질을 택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뒤,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티냐넬로 첫 빈티지(1971)의 정확한 블렌딩 비율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Wine Spectator의 상세 취재는 1971년에는 화이트 품종을 뺀 산지오베제 중심, 카베르네 블렌딩은 1975년부터로 기록합니다. 이 글은 이 판본을 따랐습니다.
「슈퍼 투스칸」이 무엇이고 왜 판을 바꿨습니까?
슈퍼 투스칸은 토스카나에서 만들어졌으나 산지 규정을 벗어나 등급을 받지 못한 고품질 와인을 부르던 말입니다. 등급이 낮은데 값은 비싼, 제도상 설명되지 않는 와인들이었습니다.
시작은 티냐넬로 이전에 있었습니다. 피에로의 이모부 마리오 인치자 델라 로케타는 볼게리 해안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고 1944년부터 집에서 마실 와인을 병입했습니다. 밭의 자갈에서 이름을 따 사시카이아라 불렀습니다. 1968년 이모부의 요청으로 피에로가 이 와인의 판매를 맡습니다.
무명 산지에서 나온 보르도 스타일 와인이 상당수 보르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자, 와인계가 술렁였습니다. 티냐넬로는 그 뒤를 이어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로도 같은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판이 바뀐 지점은 세 가지입니다.
| # | 무엇이 바뀌었나 |
|---|---|
| 1 | 등급이 품질의 증명이 아닐 수 있다 — 소비자가 등급 밖 와인에 값을 치르기 시작했다 |
| 2 | 이웃들이 따라 했다 — 인근 생산자들이 규정 밖 실험을 시작했다 |
| 3 | 제도가 따라왔다 — 1992년 IGT 등급이 신설되며 이 와인들을 담을 자리가 생겼다 |
키안티 클라시코의 이웃 생산자 폰토디의 오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에로 안티노리는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됐습니다. 티냐넬로가 없었다면 플라치아넬로도 없었습니다.」
한 회사의 결정이 산업의 규칙을 바꾼 사례입니다.
안티노리는 루마니아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데알루 마레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독립 출처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안티노리는 2009년 루마니아 와이너리의 지분 과반을 인수했습니다. 영국계 주류 수입사 헤일우드, 현지 양조가 피오렌초 리스타와의 합작이었습니다. 회사 이름은 비일레 메타모르포시스(Viile Metamorfosis) 입니다.
| 항목 | 내용 |
|---|---|
| 안티노리 참여 | 2009년 · 지분 과반 인수 |
| 산지 | 데알루 마레(Dealu Mare) — 루마니아 대표 레드 와인 산지 |
| 투자 규모 | 약 285만 유로 |
| 포도밭 | 약 100헥타르 |
| 양조장 | 프라호바주 바두 서파트(Vadu Săpat) |
| 첫 와인 | 칸투스 프리무스(Cantus Primus) 2007 — 13,000병 |
| 현재 구조 | 안티노리 + 리스타. 헤일우드는 2013년 철수 |
무엇을 심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국제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 메를로 · 피노 누아 · 샤르도네 · 소비뇽 블랑 · 뮈스카 오토넬
토착 품종 페테아스카 네아그라 · 페테아스카 알바 · 페테아스카 레갈라 · 네구루 데 드라가샤니
국제 품종만 심는 편이 팔기에는 쉽습니다. 그런데 루마니아 토착 품종을 함께 심었습니다. 앞서 본 티냐넬로의 결정 — 팔기 쉬운 쪽이 아니라 옳다고 본 쪽을 택하는 방식 — 이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640년 된 토스카나 가문이 동유럽의 산지에 자기 이름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산지에 대한 평가를 보여줍니다. 데알루 마레는 와인소풍이 루마니아 와인을 들여오는 주요 산지이기도 합니다.
주목할 점은 진출 방식입니다. 단독 진출이 아니라 현지 사업자와의 합작이었습니다. 지분은 과반을 확보해 방향은 쥐되, 현지의 밭과 사람은 현지가 맡았습니다. 앞서 본 「달팽이식 접근」과 같은 결이 있습니다.
안티노리는 루마니아 외에도 미국 나파밸리(안티카 나파밸리, 1993), 칠레, 헝가리, 몰타 등에서 사업을 운영하거나 합작해 왔습니다.
한국 기업은 무엇을 참고할 수 있습니까?
정답을 옮겨 심을 수는 없습니다. 상법도 세제도 다릅니다. 다만 질문의 형태는 가져올 수 있습니다.
| 안티노리가 한 일 | 한국 기업이 던져볼 질문 |
|---|---|
| 후계자를 수확 현장에서 시작시켰다 | 우리 2세는 첫 자리가 어디였습니까? |
| 승계 요건을 관심·열정·능력 셋으로 못 박았다 | 우리 회사의 승계 기준은 문서로 있습니까? |
| 이사회에서 외부인을 가족보다 한 명 많게 만들었다 | 가족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이사회에 있습니까? |
| 신탁으로 재산 분할을 한 세기 가까이 봉인했다 | 분쟁이 났을 때 회사를 지킬 장치가 있습니까? |
| 배당을 하지 않고 전액 재투자했다 | 우리의 배당 압력은 10년짜리 투자를 견딜 수 있습니까? |
| 적정 성장률을 스스로 3~4%로 정했다 | 우리 성장률은 누가 정합니까? 시장입니까, 우리입니까? |
| 등급을 잃더라도 품질을 택했다 | 인증·등급을 잃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
가장 무거운 항목은 세 번째와 여섯 번째입니다.
거부권을 외부에 넘기는 일, 그리고 성장률을 스스로 낮춰 잡는 일. 둘 다 오너에게 손해처럼 보입니다. 안티노리가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회사를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이 이번 세대의 성과보다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피에로 안티노리는 세 딸에게 미국의 한 가족 와이너리가 상장 이후 겪은 과정을 다룬 책을 읽게 했습니다. 막내딸은 「책을 다 읽고 울었다」고 말합니다. 세 자매가 얻은 결론은 같았습니다. 회사가 이어지려면 가족의 가치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장의 문장이 이 글의 결론에 가깝습니다.
「비즈니스는 재미로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만의 것도 아니다. 우리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 더.
「생산이나 품질 측면에서 지름길은 없다.」
이 글에서 뺀 내용은 무엇입니까?
검색으로 확인되지 않은 서술은 쓰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왜 뺐는지 밝힙니다.
| 뺀 내용 | 이유 |
|---|---|
| 「27대손」 | 안티노리 공식·Wine Spectator 모두 26대로 기록. 26대로 정정 |
| 「2008년 설립」 | 독립 출처(Decanter 등)는 2009년 안티노리 과반 인수로 기록. 2009년으로 정정 |
| 「지분 51%」 | 출처는 「과반(majority)」까지만 확인됨. 구체적 비율은 삭제 |
| 「헤일우드 현 주주」 | 2013년 철수. 현재는 안티노리 + 리스타. 현재 구조로 정정 |
|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 | 등재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음. 삭제 |
| 「626년」 | 1385년 기준 2026년은 641년째. 「640여 년」으로 표기 |
| 「투자 파트너를 2년 만에 정리했다」 | Wine Spectator 취재는 1981년 제휴 → 1991년 재매입(약 10년). 검증된 판본을 채택하고 「2년」은 뺌 |
| 1971년 티냐넬로 블렌딩 비율 | 자료마다 상충. 「1971년 화이트 품종 제거, 1975년부터 카베르네 추가」로 서술 |
| 연 3~4% 성장률 | 외부 확인 불가. 회장 본인 진술로만 표기 |
| 이사회 3+3+1 구성 | 외부 보도 없음. 회장 인터뷰 진술로 명시 |
| 매출·자산 수치 | 2014년 자료로 10년 이상 경과. 전량 제외 |
| 특정 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 | 실명 서술을 피하고 일반화 |
확인된 것만 썼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고 적었습니다.
참고 자료
- The Antinori Family | Marchesi Antinori (공식)
- The Family Trust — Wine Spectator (Mitch Frank)
- Antinori releases first Romanian wine — Decanter
- Antinori launches its first winery in Romania — Italian Good News
- Viile Metamorfosis, the Italian investment in Dealu Mare — Imperial Transilvania
- Albiera Antinori Talks Wine, Family And Business — Forbes
- Tignanello — Wikipedia
- Antinori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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