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 품종에 국제 품종을 섞는다 — 슈퍼 투스칸이 연 길

와인 라벨에서 이런 표기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산지오베제 80% · 카베르네 소비뇽 20%

앞의 것은 토스카나의 토착 품종이고, 뒤의 것은 보르도에서 온 국제 품종입니다. 지금은 흔한 조합입니다. 그런데 이 배합이 처음 나왔을 때, 그 와인은 이탈리아 등급 체계에서 가장 아래 칸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글은 「토착 품종에 국제 품종을 섞는 것」이 어떻게 타협이 아니라 정당한 양조 전략이 되었는가를 다룹니다. 그 전환점에 티냐넬로가 있습니다.


토착 품종에 국제 품종을 섞는 일이 왜 논쟁거리였습니까?

두 개의 서로 다른 요구가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그 땅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있습니다. 토착 품종은 수백 년 동안 그 기후와 토양에 맞춰 살아남은 품종입니다. 산지의 정체성이 거기서 나옵니다.

다른 한쪽에는 마실 만한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습니다. 토착 품종이 늘 완결된 와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색이 옅거나, 구조가 얇거나, 향이 단순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원산지 제도는 대체로 어떤 품종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규정으로 못 박아 둡니다. 지역의 전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등급 체계의 작동 방식은 원산지 등급 읽는 법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규정을 지키면 등급을 얻지만 원하는 와인을 못 만들고, 원하는 와인을 만들면 등급을 잃습니다.

1970년대 토스카나의 생산자들이 마주한 것이 정확히 이 갈림길이었습니다.


블렌딩으로 성격을 보완한다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보르도에도 오래된 실무였습니다.

이 대목이 자주 오해됩니다. 「토착에 국제를 섞는다」를 20세기 후반의 상업적 발명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족한 성격을 다른 품종으로 채운다는 발상 자체는 훨씬 오래됐습니다.

아주 옛날 보르도 블렌딩에는 색을 진하게 하려고 시라나 말벡을 넣었습니다. 색이 옅게 나온 해에 진한 품종을 더해 인상을 보완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단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실용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블렌딩이 실제로 하는 일은 세 갈래로 나뉩니다.

블렌딩의 목적 무엇을 채우나 옛 보르도의 예
색소가 부족한 해·품종을 보완 시라 · 말벡을 더해 색을 진하게
구조 탄닌과 골격을 세워 형태를 만든다 카베르네 소비뇽 계열이 담당
향과 살 중간의 빈 곳을 메우고 둥글게 만든다 메를로 계열이 담당

즉 블렌딩은 원래 「모자란 것을 채우는 기술」이었습니다. 티냐넬로가 한 일은 새로운 발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오래된 기술을 토착 품종이 주인공인 자리에 적용한 것입니다.


티냐넬로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습니까?

등급을 포기하고 원하던 와인을 얻었습니다.

배합부터 보겠습니다. 티냐넬로의 초기 배합은 산지오베제 80%에 카베르네 소비뇽 20% 였습니다. 토스카나의 토착 품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보르도 품종이 나머지를 맡는 구조입니다.

당시 산지 규정으로는 이 와인이 키안티 클라시코를 표방할 수 없었습니다. 남은 자리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등급 체계의 최하위인 「비노 다 타볼라(vino da tavola)」, 우리말로 테이블 와인입니다.

규정을 지켰다면 티냐넬로가 택한 길
표기 등급 키안티 클라시코 비노 다 타볼라 (최하위)
라벨에 쓸 수 있는 산지명 있다 없다
품종 구성의 자유 규정에 묶인다 자유롭다
소비자가 받는 첫인상 등급이 보증한다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와인 자체의 평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표의 마지막 두 줄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등급은 최하위인데 평가는 최상위라는 모순된 상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토스카나에서 나왔으나 등급 밖에 있던 고품질 와인들을 부르는 말이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입니다. 공식 등급 명칭이 아닙니다. 제도가 설명하지 못하는 와인들을 부르기 위해 시장이 만들어낸 이름입니다.


왜 산지오베제를 80%나 남겼습니까?

주인공을 바꾸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세계 어디서든 안정적으로 좋은 와인이 되는 품종입니다. 팔기만 생각하면 카베르네를 다수로 올리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만든 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티냐넬로는 산지오베제를 80%로 두었습니다. 이유를 이해하려면 산지오베제라는 품종의 성격을 봐야 합니다.

산지오베제가 가진 것 산지오베제가 아쉬운 것 카베르네 소비뇽이 채우는 것
밝고 투명한 루비 색이 옅게 나올 수 있다 색을 진하게 받쳐 준다
산도 높다. 음식과 잘 맞는다 (건드리지 않는다)
탄닌 결이 가늘고 날카롭다 중간이 비어 보일 수 있다 중간 구조를 메운다
붉은 체리 · 토마토 · 마른 허브 단조로워질 때가 있다 검은 과일과 향신료를 더한다
여운 길고 깔깔하게 마무리 각지게 느껴질 수 있다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다

20%라는 숫자가 정확히 이 경계선입니다. 부족한 곳을 채우기에는 충분하고, 산지오베제의 성격을 덮어버리기에는 모자란 양입니다.

더 넣었다면 카베르네 와인이 되었을 것이고, 넣지 않았다면 채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토착 + 국제」 블렌딩의 판단 기준이 나옵니다. 국제 품종은 주인공을 대체하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못 하는 일을 하러 들어옵니다. 이 선을 넘으면 그냥 국제 품종 와인이 되고, 산지의 정체성은 사라집니다.


등급 밖에 있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상태였습니까?

팔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슈퍼 투스칸이 유명해진 뒤라 이 결정이 영리해 보입니다.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비자가 와인을 고르는 거의 유일한 단서가 등급이던 시절입니다. 라벨에 최하위 카테고리가 적혀 있고 산지명도 쓸 수 없는 와인을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오는 데 20년 넘게 걸렸습니다.

시점 무슨 일이 있었나
1971년 티냐넬로 첫 빈티지. 산지 규정을 벗어나 등급을 잃음
1970~80년대 라벨상 비노 다 타볼라. 이웃 생산자들이 유사한 시도를 시작
1980년대 슈퍼 투스칸이라는 호칭이 시장에서 굳어짐
1992년 이탈리아가 IGT 등급을 신설. 이 와인들이 들어갈 자리가 생김

규정이 먼저 있고 와인이 따라간 것이 아니라, 와인이 먼저 있고 규정이 따라왔습니다. 이것이 슈퍼 투스칸이 남긴 가장 큰 유산입니다.

이후 이탈리아 각지에서 「우리도 토착 품종을 중심에 두고 국제 품종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이탈리아 산지별 품종과 등급 구조는 아카데미 이탈리아 와인 과정에서 다룹니다.


이 판단은 어떤 원칙 위에서 나왔습니까?

한 세대의 결단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판단 기준 위에서 나왔습니다.

티냐넬로를 만든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안티노리 가문입니다. 이 가문은 피렌체에 거주한 지 1100년이 되었고, 1385년 피렌체 와인길드에 가입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가입을 창업 시점으로 보면 세계 최장수 와인 기업에 해당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 아니라 「세계 최장수 와인 기업」 입니다. 업종을 불문한 최장수 기업은 일본의 곤고구미 등 별개의 사례가 있습니다.

가문의 문장에는 1400년대부터 내려오는 라틴어 가훈이 있습니다.

Te duce proficio — 「당신의 안내를 따라 나는 나아간다」

대표 와인은 티냐넬로 · 솔라이아 · 체르바로 델라 살라 셋으로 꼽힙니다.

현 회장은 알비에라 안티노리(1966년생) 로, 2017년에 취임한 가문 역사상 유일한 여성 회장입니다. 그가 밝힌 양조 철학의 순서가 이 글의 주제와 곧바로 맞닿습니다.

순위 무엇
1순위 좋은 떼루아를 찾아내는 것
2순위 품종
3순위 양조

품종이 1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보셔야 합니다. 땅이 먼저이고 품종은 그다음입니다. 「이 땅에는 반드시 이 품종만」이라는 사고가 아니라 **「이 땅에 무엇이 맞는가」**를 먼저 묻는 순서입니다. 토착 품종에 국제 품종을 더하는 판단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런 판단이 한 사람의 취향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가문은 2012년 가족신탁을 세워 90년간 재산 분할을 금지했고, 이사회를 가족 3명 + 신탁 3명 + 외부 CEO 1명, 모두 7명으로 구성했습니다. 가족이 과반이 아닙니다. 승계와 지배구조 이야기는 600년 이어진 와인 가문 안티노리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같은 논리가 지금 어디에서 반복되고 있습니까?

신흥 산지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 토스카나가 처했던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적은 토착 품종이 있고, 그 품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고, 국제 품종을 섞으면 등급이나 정통성 논란이 따라온다.

이 조건은 토스카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루마니아 데알루 마레(Dealu Mare) 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 산지입니다. 이곳의 토착 품종 페테아스카 네아그라(Fetească Neagră) 에 국제 품종인 쉬라즈를 섞는 시도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조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보입니다.

1970년대 토스카나 오늘의 데알루 마레
토착 품종 산지오베제 페테아스카 네아그라
더해지는 국제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쉬라즈
토착 품종의 인지도 지역 안에서는 알려짐 국제 시장에서 아직 낯설다
국제 품종이 맡는 역할 구조 · 색 · 검은 과일 향신료 · 중간의 살 · 여운
논란의 지점 등급을 잃는다 정통성이 흐려지는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티냐넬로의 사례가 말해 주는 것은 「섞으면 된다」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입니다.

주인공이 바뀌지 않았는가. 채우려는 부분이 분명한가. 그 땅에서 나올 수 있는 와인인가.

이 셋을 통과하면 블렌딩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그냥 다른 와인이 됩니다. 페테아스카 네아그라라는 품종 자체에 대해서는 페테아스카 네아그라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같은 논리가 50년의 시차를 두고 다른 산지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 — 이것이 지금 루마니아 와인을 볼 때 알아 두면 유용한 배경입니다.


이 글의 요점

  • 티냐넬로의 초기 배합은 산지오베제 80% + 카베르네 소비뇽 20% 입니다. 토착 품종이 주인공 자리를 지키고, 국제 품종은 보완만 맡는 비율입니다.
  • 이 배합은 당시 산지 규정을 벗어나 등급을 잃었고, 최하위인 「비노 다 타볼라」로 표기됐습니다. 라벨에 산지명도 쓸 수 없었습니다.
  • 1992년 이탈리아가 IGT 등급을 신설하면서 제도가 뒤늦게 따라왔습니다. 규정이 와인을 이끈 것이 아니라 와인이 규정을 바꾼 사례입니다.
  • 블렌딩으로 성격을 보완한다는 발상 자체는 오래됐습니다. 아주 옛날 보르도 블렌딩에도 색을 진하게 하려고 시라나 말벡을 넣었습니다.
  • 판단 기준은 「섞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주인공이 바뀌었는가」입니다. 국제 품종이 다수를 차지하면 산지의 정체성은 사라집니다.
  • 안티노리 가문(1385년 피렌체 와인길드 가입, 세계 최장수 와인 기업)의 양조 철학은 떼루아 1순위 · 품종 2순위 · 양조 3순위입니다. 품종이 먼저가 아니라 땅이 먼저입니다.
  • 같은 논리가 루마니아 데알루 마레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토착 품종 페테아스카 네아그라에 쉬라즈를 더하는 시도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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