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이 최고 등급이 되기까지 — 프리오라트가 증명한 것
와인 산지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좋은 산지는 처음부터 좋았고, 그 명성이 대를 이어 내려왔다는 생각입니다.
프리오라트(Priorat)는 그 반대의 사례입니다. 이 지역은 한때 5,000헥타르 규모였다가 1970년대에 약 600헥타르까지 줄었습니다. 사람이 떠났고 밭은 덤불에 덮였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스페인에서 최고 등급을 가진 산지는 리오하와 프리오라트 두 곳뿐입니다.
무너진 원인과 되살아난 과정을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이 구조는 프리오라트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프리오라트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요?
수도원장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카탈루냐어 El Priorat 는 「수도원 관할지」를 가리킵니다.
1194년 아라곤 왕 알폰소 2세가 이베리아 반도 최초의 카르투시오 수도원인 스칼라 데이(Scala Dei) 를 이곳에 세웁니다. 이름은 「신의 계단」이라는 뜻입니다. 수도사들이 이 험한 비탈에 포도밭을 열었고, 기록상 이 지역의 와인은 1263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도사들이 남긴 것은 포도나무만이 아닙니다. 경사면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costers) 과 그 밭을 다루는 방법이 함께 남았습니다. 수도원은 약 7세기 동안 유지되다 19세기에 문을 닫았고, 땅은 지역 주민에게 넘어갔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5,000헥타르가 600헥타르로 — 무엇이 무너졌나요?
두 가지가 겹쳤습니다. 병충해와 사람의 이탈입니다.
19세기 말 유럽 전역을 휩쓴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혹벌레) 가 프리오라트에도 들어왔습니다. 다른 지역은 미국계 대목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밭을 다시 세웠습니다. 프리오라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지형입니다. 이곳의 밭은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급경사이고, 계단식 밭 하나를 다시 만드는 데 드는 사람 손이 평지의 몇 배입니다. 다시 심는 비용이 그 밭에서 나올 수익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20세기 내내 이 지역은 인구가 빠져나가는 곳이었고, 남은 밭은 방치됐습니다. 1980년대까지 프리오라트는 「버려진 계단밭과 늙은 포도나무가 있는 잊힌 산골」이었습니다.
| 시기 | 포도밭 면적 | 상태 |
|---|---|---|
| 필록세라 이전 (19세기 말) | 약 5,000ha | 전성기 |
| 1979년 | 약 600ha | 최저점. 약 88% 소멸 |
| 2018년 기준 | 약 2,010ha | 회복 중 |
주목할 점은 회복된 지금도 전성기의 절반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프리오라트가 대량으로 나올 수 없는 산지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밭을 늘리는 일이 물리적으로 어렵습니다.
리코렐라(llicorella)는 어떤 토양인가요?
검은 점판암(슬레이트)과 석영이 부서져 만들어진 토양입니다. 프리오라트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이고, 이 산지의 성격을 사실상 결정합니다.
고생대에 형성된 암반이 오랜 세월 부서져 지금의 층을 이뤘습니다. 표면은 햇빛을 받으면 검게 반짝입니다. 흙이라기보다 잘게 깨진 돌에 가깝습니다.
| 특성 | 내용 | 포도나무에 미치는 영향 |
|---|---|---|
| 배수 | 물이 거의 머무르지 않음 | 뿌리가 물을 찾아 깊이 내려감 |
| 양분 | 유기물이 매우 적음 | 잎·줄기보다 열매 쪽으로 힘이 감 |
| 보수력 | 거의 없음 | 나무가 늘 갈증 상태에 놓임 |
| 표면 열 | 검은 돌이 낮의 열을 머금음 | 밤낮 온도차를 완충 |
핵심은 「나무를 편하게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과 양분이 부족하면 나무는 열매를 많이 달지 못합니다. 프리오라트의 수확량이 한 그루당 1kg 미만까지 내려가는 것은 이 토양 때문입니다. 적게 열린 열매에는 성분이 응축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프리오라트 레드의 진한 질감으로 이어집니다.
기후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몬트산트 산맥 자락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이 약 14°C, 연 강수량이 450~650mm 수준입니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춥습니다.
토양이 품종과 스타일을 어떻게 가르는지는 토양과 품종 편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왜 가르나차와 카리녜나인가요?
이 두 품종만 이 조건에서 버텼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고 양분이 없으며 여름이 뜨거운 밭에서는 대부분의 품종이 익기 전에 지칩니다. 프리오라트에 남은 것은 지중해 기후에 적응한 두 토착 품종이었습니다.
| 가르나차 (Garnacha) | 카리녜나 (Cariñena) | |
|---|---|---|
| 다른 이름 | 그르나슈(프랑스) · 칸노나우(사르데냐) | 삼소(카탈루냐) · 카리냥(프랑스) · 마수엘로(리오하) |
| 원산지 | 스페인 아라곤 | 스페인 아라곤 |
| 껍질·색 | 얇고 색이 옅은 편 | 두껍고 색이 진함 |
| 산도 | 낮은 편 | 높은 편 |
| 타닌 | 부드러움 | 단단함 |
| 이 산지에서의 역할 | 무게감과 잘 익은 과실 | 산도와 뼈대 |
두 품종은 서로의 약점을 메웁니다. 가르나차만으로는 늘어지기 쉽고, 카리녜나만으로는 거칠어지기 쉽습니다. 프리오라트의 전통적인 블렌딩은 이 균형을 맞추는 작업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카리녜나 중에는 수령 90년을 넘긴 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필록세라 이후 아무도 뽑지 않고 방치한 결과, 역설적으로 노령목이 살아남았습니다. 버려졌던 것이 자산이 된 셈입니다.
두 품종의 원산지인 아라곤에 대해서는 아라곤 DO 정리 편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1979년 그라탈롭스에서 시작된 일
한 사람이 스물아홉에 시작했습니다.
1950년생인 르네 바비에(René Barbier) 는 1979년 프리오라트의 마을 그라탈롭스(Gratallops) 에서 버려진 밭을 개간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와인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첫 와인이 나온 것은 1989년입니다. 개간에서 출시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다섯 생산자가 포도를 모으고 양조장을 함께 쓰면서, 하나의 와인을 다섯 개의 라벨로 나눠 출시했습니다.
| 라벨 | 생산자 |
|---|---|
| 끌로 모가도르 (Clos Mogador) | 르네 바비에 |
| 끌로 도피 (Clos Dofí) | 알바로 팔라시오스 |
| 끌로 마르티네 (Clos Martinet) | 조셉 류이스 페레스 |
| 끌로 에라스무스 (Clos Erasmus) | 다프네 글로리안 |
| 끌로 데 로박 (Clos de l'Obac) | 카를레스 파스트라나 · 마리오나 하르케 |
1992년부터 각자 독립해 자기 양조장에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공동 체제는 3년으로 끝났지만, 그 3년이 없었으면 개별 생산자 누구도 시작 자체를 못 했을 것입니다. 밭을 되살리는 초기 비용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르네 바비에가 현재 내는 와인은 끌로 모가도르, 마니에테스(Manyetes), 넬린(Nelin), 에스펙타클(Espectacle) 입니다. 넬린은 이 산지에서 드문 화이트입니다.
DO와 DOCa/DOQ는 무엇이 다른가요?
등급이 아니라 「검증의 깊이」가 다릅니다.
스페인의 원산지 체계는 아래와 같이 정리됩니다.
| 구분 | 명칭 | 성격 |
|---|---|---|
| DOCa / DOQ | Denominación de Origen Calificada (카탈루냐어 Denominació d'Origen Qualificada) |
최상위. 리오하 · 프리오라트 2곳뿐 |
| DO | Denominación de Origen | 원산지 통제 명칭. 스페인 산지 대부분 |
| VP | Vino de Pago | 특정 단일 포도밭에 부여 |
| VdlT / IGP | Vino de la Tierra | 지역 표시 수준 |
| Vino | Vino de España | 산지 표시 없음 |
DOCa와 DOQ는 같은 것입니다. 스페인어 표기가 DOCa(Calificada), 카탈루냐어 표기가 DOQ(Qualificada)입니다. 프리오라트는 카탈루냐에 있으므로 현지 라벨과 공식 문서에는 DOQ Priorat 으로 적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다른 두 등급으로 오해하기 쉬운 지점입니다.
승격 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리오하 — 1991년, 스페인 최초의 DOCa
- 프리오라트 — 1954년 DO 지정 → 2000년 카탈루냐 정부가 DOQ 승격 → 2009년 국가 차원에서 확인
600헥타르까지 무너졌던 곳이 21년 만에 최상위 등급에 올랐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의 AOC·AOP 체계와 비교해 보시려면 AOC·AOP·IGP 정리 편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프리오라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갑니다. 2009년 마을 단위 표기인 비 데 빌라(Vi de Vila) 를 도입했고, 2020년에는 밭 단위까지 나누는 5단계 체계 엘스 노므스 데 라 테라(Els Noms de la Terra) 를 시행했습니다.
| 단계 | 범위 |
|---|---|
| DOQ Priorat | 산지 전체 |
| Vi de Vila | 12개 마을 단위 |
| Vi de Paratge | 더 작은 구역 단위 |
| Vinya Classificada | 개별 밭 |
| Gran Vinya Classificada | 최상위 개별 밭. 수령 35년 이상, 가르나차·카리녜나 90% 이상 |
부르고뉴가 수백 년에 걸쳐 만든 밭 단위 구분을, 프리오라트는 부활 30년 만에 제도로 정리한 것입니다.
유통하던 사람이 만드는 쪽으로 넘어간 사례
끌로 피게라스(Clos Figueras) 는 다른 각도에서 볼 만한 사례입니다.
보르도에 본사를 둔 와인 유통사 유로뱅(Europvin)의 크리스토퍼 캐넌(Christopher Cannan) 부부는 1997년 10월 그라탈롭스의 밭을 매입합니다. 르네 바비에의 권유가 계기였습니다. 시작은 버려진 계단밭 10헥타르였고, 2000년에 8헥타르를 더해 총 18헥타르가 됐습니다.
이 18헥타르 중 실제 포도밭은 12헥타르입니다. 나머지는 올리브나무와 작은 숲, 그리고 심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가파른 비탈입니다. 부지에는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 올리브나무 135그루가 남아 있습니다.
| 항목 | 내용 |
|---|---|
| 매입 | 1997년 10월 (10ha) + 2000년 추가 (8ha) |
| 총 부지 | 18ha |
| 실제 포도밭 | 12ha |
| 연간 생산 | 3만~3.5만 병 |
| 평가 기록 | 2001 빈티지 로버트 파커 96점 |
연 3만~3.5만 병은 큰 수치가 아닙니다. 규모가 작은 이유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물리적 제약입니다. 18헥타르 중 3분의 1은 심을 수 없는 경사이고, 심은 12헥타르에서도 리코렐라 토양 탓에 한 그루가 내는 양이 적습니다. 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이 만들 수 없는 구조입니다.
파커 96점은 2001년이라는 특정 빈티지에 대해 한 평가자가 매긴 척도입니다. 점수는 그 와인이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읽는 참고 자료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빈티지가 다르면 평가도 달라집니다.
지금 이 와인을 마신다면 어떤가. 가르나차 중심에 카리녜나가 뼈대를 잡은 프리오라트 레드는 진하고 단단한 편이라 잔에 따른 뒤 시간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양갈비·소고기 구이·숙성 치즈처럼 지방과 감칠맛이 있는 음식과 맞물립니다.
버려진 땅이 산지가 되는 구조는 반복되나요?
반복됩니다. 조건이 몇 가지 맞을 때입니다.
프리오라트의 부활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경작하기 어려워 버려진 땅이 있었고 ②그 어려움이 곧 품질 조건이었으며 ③이를 알아본 소수가 초기 비용을 나눠 감당했고 ④제도가 뒤늦게 따라와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국 워싱턴주는 다른 경로로 같은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곳은 연 강수량이 150~400mm 에 불과한 건조지대입니다. 포도를 심을 만한 땅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3개 AVA · 850여 와이너리 · 350여 재배자 · 약 5만 에이커 규모입니다. 게다가 이 건조한 환경은 필록세라가 살기 어려워, 접목하지 않은 자근(自根) 재배가 가능합니다. 「불리한 조건」이 「다른 곳에 없는 조건」으로 뒤집힌 사례입니다.
유럽 안에도 비슷한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데알루 마레(Dealu Mare) 는 사회주의 시기를 거치며 대규모 국영 체제로 운영되다가, 체제 전환 이후 소유 구조와 밭 관리가 다시 정비되고 있는 산지입니다. 오래된 밭과 토착 품종이 남아 있고, 그것을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프리오라트가 1979년에 서 있던 자리와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다. 산지 소개는 데알루 마레 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산지의 명성은 유산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프리오라트는 그것을 40년 만에 증명했습니다.
이 글의 요점
- 프리오라트는 필록세라와 이농으로 약 5,000ha에서 1970년대 약 600ha까지 무너졌습니다. 급경사 계단식 밭을 다시 세우는 비용이 수익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 리코렐라(llicorella) 는 검은 점판암과 석영이 부서진 토양입니다. 배수가 극단적으로 좋고 양분이 거의 없어 나무를 늘 갈증 상태에 두고, 그 결과 수확량이 한 그루당 1kg 미만까지 내려갑니다.
- 이 조건에서 버틴 품종이 가르나차(무게감·과실)와 카리녜나(산도·뼈대)입니다. 방치된 덕분에 수령 90년을 넘긴 카리녜나가 살아남았습니다.
- 1979년 르네 바비에(29세)가 그라탈롭스에서 개간을 시작해 1989년 첫 출시를 했고, 다섯 생산자가 1989~1991년 공동 양조로 하나의 와인을 다섯 라벨로 냈습니다. 1992년부터 각자 독립했습니다.
- DOCa(스페인어)와 DOQ(카탈루냐어)는 같은 최상위 등급이며, 스페인에서 이를 가진 곳은 리오하(1991년)와 프리오라트(2000년) 두 곳뿐입니다.
- 끌로 피게라스는 유통업자가 생산으로 넘어간 사례로, 18ha 중 포도밭은 12ha, 연 3만~3.5만 병입니다. 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형과 토양 때문에 많이 만들 수 없는 구조입니다.
- 「버려진 땅이 산지가 된다」는 구조는 워싱턴주에서도, 정비 중인 루마니아 데알루 마레에서도 반복됩니다. 산지의 명성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