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이란 어디인가 — 와인의 제4세계
첫 강은 지도를 펴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아홉 개 강에 걸쳐 나라를 하나씩 돌 텐데, 그 전에 「발칸」이라는 말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 그리고 왜 이 지역의 와인이 하나로 묶여 이야기되는지를 먼저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뒤의 아홉 강이 그냥 낯선 나라 이름 아홉 개로 흩어집니다.
발칸 와인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핵심
땅은 원래 좋았고, 지난 100년이 문제였으며, 지금 그 100년을 되돌리는 중이다.
이 문장이 왜 성립하는지를 이번 강에서 봅니다.
발칸 와인이란 무엇인가요?
발칸반도와 그 인접국에서 만드는 와인을 통틀어 부르는 말입니다. 프랑스 와인이나 이탈리아 와인처럼 하나의 법적 체계가 있는 이름이 아니라, 지리와 역사를 공유하는 여러 나라를 묶어 부르는 편의상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경계가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이 과정은 아래 12개국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 구분 | 나라 |
|---|---|
| 와인 생산이 활발한 나라 | 루마니아 ·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북마케도니아 ·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그리스 |
| 함께 묶이는 나라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코소보 · 튀르키예(유럽부) |
여기에 헝가리 남부와 몰도바를 넣어 14개국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발칸의 토착 품종·양조 전통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도 필요할 때마다 두 나라를 참조합니다.
발칸에 속한 나라는 어디까지인가요?
「어디까지가 발칸인가」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지리로 그으면 반도의 경계선이 기준이 되고, 문화로 그으면 오스만 제국의 영향권이 기준이 되며, 와인으로 그으면 품종의 분포가 기준이 됩니다. 셋이 서로 다릅니다.
두 가지 단서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하나, 슬로베니아는 스스로를 발칸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슬로베니아는 지리적으로 흔히 발칸으로 분류되지만, 문화적·역사적으로는 중유럽에 가깝습니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양조 기술도 그쪽에서 왔습니다. 현지에서 「발칸 와인」이라고 소개하면 정정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과정이 슬로베니아를 다루는 것은 편의상의 분류일 뿐입니다.
둘, 루마니아는 반도 바깥이 넓습니다. 루마니아는 국토 대부분이 다뉴브강 북쪽에 있어 반도 본체와는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발칸 와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품종이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의 타마이오아사 로마네아스카와 세르비아의 탐야니카, 불가리아의 타미얀카는 어원과 계통이 같은 하나의 계보입니다. 국경은 나중에 그어졌고 포도밭이 먼저 있었습니다.
알아두기
품종의 계보만 따로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라벨을 읽는 데 바로 쓰입니다. → 이름은 다른데 같은 포도 — 발칸을 가로지르는 품종 계보
왜 「제4세계」라고 부르나요?
와인 세계를 나누는 관습적인 구분이 있습니다. 여기에 발칸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 구분 | 어디를 가리키나 | 특징 |
|---|---|---|
| 구대륙 | 프랑스 · 이탈리아 · 스페인 · 독일 · 포르투갈 | 수백 년에 걸쳐 산지와 등급 체계가 완성됨 |
| 신대륙 | 미국 · 칠레 · 아르헨티나 · 호주 · 뉴질랜드 · 남아공 | 15~19세기 항해·식민 개척과 함께 유럽 품종이 옮겨 심어진 곳 |
| 제3세계 | 조지아 · 헝가리 · 루마니아 · 몰도바 · 슬로베니아 등 중동부 유럽, 그리고 중국 · 일본 · 한국 | 계획경제 체제에서 벌크 와인 생산지로 밀려 있다가 1989년 이후 다시 품질로 방향을 튼 나라들 |
| 제4세계 | 발칸 | 위 어디에도 깔끔히 들어가지 않는 지역 |
「제4세계」는 이 과정의 집필자가 발칸을 가리켜 쓰는 표현입니다. 공인된 분류 용어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런데도 이 이름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발칸은 구대륙의 조건을 갖췄는데 구대륙 대접을 못 받고, 신대륙처럼 새로 개척된 땅이 아닌데 시장에서는 신대륙처럼 취급되며, 제3세계와 역사는 공유하지만 나라 수가 열 개를 넘어 하나로 묶어 보기 어렵습니다.
즉 기존 세 칸 중 어디에 넣어도 설명이 남습니다. 그래서 칸을 하나 더 만든 것입니다. 이름 자체보다 「기존 분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위도로 보면 발칸은 어디에 있나요?
와인용 포도가 안정적으로 익는 위도대를 흔히 북위 30~50도로 잡습니다. 북반구 와인 벨트입니다.
| 기준 | 위도 |
|---|---|
| 북반구 와인 벨트 | 북위 30~50도 |
| 발칸반도 | 북위 약 36~45도 (본토 기준) |
| 루마니아 | 북위 43°40′~48°15′ |
| (참고) 보르도 | 북위 약 45도 |
핵심
발칸반도의 남쪽 한계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반도 본체의 남단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의 케이프 마타판(약 북위 36.4도)입니다. 크레타·가브도스 같은 남쪽 섬까지 넣으면 북위 34도까지 내려갑니다. 이 과정은 본토 기준으로 약 36~45도를 씁니다.
발칸은 이 벨트 안에 통째로 들어갑니다. 남쪽 끝 그리스에서 북쪽 끝 루마니아까지 전부 그렇습니다. 그것도 벨트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한가운데를 지납니다.
여기에 한 나라 안에서 위도 차이가 크다는 점이 더해집니다. 남쪽 알바니아·북마케도니아는 따뜻해 진한 레드가 나오고, 북쪽 루마니아·슬로베니아는 서늘해 산도가 살아 있는 화이트가 나옵니다. 같은 발칸이라는 말로 묶여 있지만 스타일의 폭이 대단히 넓습니다. 뒤의 아홉 강에서 계속 확인하게 될 사실입니다.
발칸 와인은 왜 지금까지 몰랐나요?
땅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100년의 문제입니다. 역사를 여섯 단계로 끊어 보면 선명해집니다.
| 단계 | 시기 | 무슨 일이 있었나 |
|---|---|---|
| ① 고대 | 기원전 | 트라키아 · 일리리아 · 다키아의 토착 양조 위에 그리스 · 로마의 기술이 얹힘 |
| ② 중세 | 4~14세기 | 비잔티움과 정교회 수도원이 포도밭과 양조를 이어받음 |
| ③ 오스만 시기 | 14~19세기 | 약 500년간 와인 산업이 위축. 다만 완전 금지는 아니었고 포도·와인에 매기는 세금(이스펜세)이 존재했으며, 이 시기에 증류주 라키아 문화가 자리 잡음 |
| ④ 필록세라 | 19세기 말 | 포도밭이 광범위하게 황폐화. 재건 과정에서 프랑스 품종이 대량 도입됨 |
| ⑤ 계획경제기 | 20세기 중후반 | 국영 농장 체제에서 양 중심 벌크 와인 생산지로 전환. 품질이 무너짐 |
| ⑥ 부활기 | 1990년대 이후 | 민영화와 부티크 와이너리의 등장. 다시 품질로 방향 전환 |
핵심은 ⑤와 ⑥ 사이입니다. 세계의 와인 애호가가 산지 지도를 머릿속에 그린 시기가 정확히 ⑤와 겹칩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캘리포니아와 바로사가 이름을 얻던 그 30~40년 동안 발칸은 품질이 아니라 물량으로 평가받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도에 이름을 올릴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⑥이 시작된 뒤에도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설비를 새로 들이고, 밭을 다시 심고, 그 나무가 열매를 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그 결과가 병에 담겨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1989년 이후에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나요?
세 가지가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① 서유럽의 자본과 기술. 이탈리아·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영국·호주의 생산자와 투자자가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찾은 것은 좋은 조건의 땅과 낮은 지대·인건비였습니다. 새 양조 설비가 들어서고, 밖에서 배운 양조가가 들어오거나 돌아왔습니다.
② 국제 품종. 자본과 함께 샤르도네·소비뇽 블랑·카베르네 소비뇽·메를로·피노 누아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이미 필록세라 재건기(④)에 프랑스 품종이 한 차례 들어온 위에 다시 얹힌 셈입니다.
③ EU 제도와 자금. EU에 가입했거나 가입을 준비하는 나라들이 원산지 보호 제도를 정비하고 설비 투자에 보조를 받았습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2007년, 크로아티아가 2013년에 EU에 가입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발칸 와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어집니다.
「토착 + 국제 품종의 혼성 구조」란 무엇인가요?
발칸의 와이너리는 한 곳에서 두 종류의 와인을 만듭니다.
한쪽에는 그 땅에만 있는 토착 품종이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페테아스카 네아그라, 세르비아의 프로쿠파츠, 불가리아의 마브루드, 몬테네그로의 브라나츠, 알바니아의 칼메트 같은 이름들입니다. 다른 쪽에는 어디서나 보는 국제 품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을 섞은 블렌드가 또 한 축을 이룹니다.
이 구조는 마시는 쪽에 실용적인 이점이 있습니다.
| 무엇을 고르나 | 무엇을 얻나 |
|---|---|
| 국제 품종 | 아는 맛이 기준선이 됩니다. 이 산지가 어떤 성격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
| 토착 품종 | 다른 데서 구할 수 없는 맛입니다. 이 지역을 마시는 이유입니다 |
| 블렌드 | 익숙함과 낯섦이 한 병에 들어 있습니다. 입문에 부담이 적습니다 |
처음이라면 국제 품종부터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기준선을 잡은 다음 토착 품종으로 넘어가면 차이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순서를 뒤집으면 낯섦이 산지의 성격을 가려버립니다.
발칸 와인은 가성비가 좋은가요?
대체로 그렇지만, 무조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질문에는 정확하게 답해야 합니다.
값이 낮은 쪽으로 작용하는 요인은 분명합니다. 브랜드 프리미엄이 아직 붙지 않았습니다. 보르도라는 이름에 붙는 값이 여기에는 없습니다. 포도밭 값과 인건비도 서유럽보다 낮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작용하는 요인도 있습니다.
| 요인 | 내용 |
|---|---|
| 물류 | 내륙 국가는 항구까지의 거리가 길고 운송 단계가 많습니다 |
| 규모 | 연 2만 리터 이하의 소규모 부티크가 많아 단위당 생산 원가가 높습니다 |
| 내수 | 자국 소비량이 많은 나라는 수출가를 낮출 이유가 없습니다 |
그래서 발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싸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세르비아처럼 현지 가격이 높아 수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2강에서 자세히 봅니다).
알아두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싸서 좋다」가 아니라 「조건이 좋은데 아직 안 알려져서 값이 낮다」 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실망하게 됩니다. 값을 기준으로 고르면 값만 남습니다.
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나라를 하나씩 돕니다. 각 강은 ① 개관 ② 토착품종 ③ 주요 산지 ④ 등급체계 ⑤ 한국 시장에서의 위치 — 다섯 개 절로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구조가 같아야 나라끼리 비교가 됩니다.
| 강 | 나라 | 이 강의 열쇠말 |
|---|---|---|
| 1강 | 개관 | 지금 이 강입니다 |
| 2강 | 루마니아 | 재배면적 EU 5위 · 데알루 마레 · 페테아스카 3형제 |
| 3강 | 세르비아 | 발칸의 교차로 · 프로쿠파츠 · 22개 산지 |
| 4강 | 불가리아 | 트라키아 · 마브루드 · 멜닉 |
| 5강 | 북마케도니아 | 바르다르 계곡 · 브라나츠 · 스타누시나 |
| 6강 | 슬로베니아 | 오렌지 와인 · 레불라 · 테란 |
| 7강 | 몬테네그로 | 브라나츠 · 크르스타치 · 유럽 최대급 단일 포도밭 |
| 8강 | 알바니아 | 셰쉬 이 지 · 칼메트 · 고도로 나눈 산지 |
| 9강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보너스) | 토착품종이 가장 다양한 나라 |
| 10강 | 고르는 법 · 한식 페어링 | 라벨 읽기 · 가격대 · 음식 궁합 |
순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2강 루마니아가 가장 깁니다. 발칸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자료가 가장 두텁고, 한국에서 실제로 구할 수 있는 와인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뒤로 갈수록 한국 시장에서의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다른 데서 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다음 강에서 발칸의 거인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이 강의 요점
- 발칸 와인은 12개국을 묶어 부르는 편의상의 이름이다. 경계는 자료마다 다르고, 슬로베니아처럼 스스로를 발칸으로 부르지 않는 나라도 있다.
- 「제4세계」는 집필자의 표현이다. 구대륙·신대륙·제3세계 어디에 넣어도 설명이 남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 발칸은 본토 기준 북위 약 36~45도, 북반구 와인 벨트 한가운데에 통째로 들어간다(남쪽 섬까지 포함하면 34도). 남북 위도 차가 커서 스타일의 폭이 넓다.
- 저평가의 원인은 땅이 아니라 최근 100년이다. 세계가 산지 지도를 그리던 시기에 이 지역은 물량으로 평가받는 자리에 있었다.
- 가성비는 조건부다. 브랜드 프리미엄이 없어 값이 낮지만, 물류·규모·내수가 반대로 작용한다. 「싸서 좋다」가 아니라 「아직 안 알려져서 값이 낮다」가 정확한 순서다.
이어서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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