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밭인데 왜 값이 다른가 — 부르고뉴가 쪼개진 내력
매장에서 부르고뉴 코너 앞에 서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라벨에 똑같이 Clos de Vougeot라고 적힌 병이 여러 개인데, 값이 서로 다릅니다. 심하면 몇 배가 벌어집니다. 만든 회사 이름도 전부 다릅니다.
이것은 표기 오류도, 가짜도 아닙니다. 부르고뉴에서는 정상입니다. 다른 산지라면 같은 이름의 와인은 만드는 곳도 하나입니다. 부르고뉴는 반대입니다. 밭 이름 하나에 만드는 사람이 수십 명씩 붙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8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내력을 알면 라벨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가 정해집니다.
클로 드 부조 한 곳에 주인이 몇 명인가요?
50.6헥타르 한 구획에 소유자가 80명이 넘습니다.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는 코트 드 뉘에서 가장 큰 그랑 크뤼 단일 포도밭입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구획이고, 담장 안쪽 전체가 그랑 크뤼 AOC입니다. 이 가운데 실제 재배가 이뤄지는 면적은 약 47.3헥타르입니다.
「80명 이상」이라는 숫자는 2000년대 초 기준으로 옥스퍼드 와인 컴패니언에 기록된 값입니다. 최근 자료들은 80명대 중반, 구획 수로는 130개 이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현재 인원은 매매와 상속에 따라 계속 바뀌므로 「80명 안팎」 이상으로 못 박지 않는 편이 정확합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소유자들은 각자 자기 몫에서 딴 포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따로 양조합니다. 수확 시점도, 발효 방식도, 오크 사용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니 같은 이름이 붙은 와인이 수십 가지 나옵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밭 안쪽의 땅이 균질하지 않습니다.
| 구획 위치 | 토양 | 배수 |
|---|---|---|
| 위쪽(샤토 주변, 북서 모서리) | 어란상 석회암 위의 가볍고 자갈 섞인 토양 | 좋음 |
| 가운데 | 무른 석회암 + 점토 + 약간의 자갈 | 보통 |
| 아래쪽(N74 도로 쪽, 거의 평지) | 부식질이 많은 충적 점토 | 나쁨 |
부르고뉴의 다른 밭은 비탈의 높이에 따라 등급을 나눠 붙였습니다. 클로 드 부조는 담장 안이라는 이유로 전체가 한 등급으로 묶였습니다. 그래서 코트 드 뉘의 다른 곳이라면 프리미에 크뤼나 빌라주로 분류됐을 위치까지 그랑 크뤼 표기를 받습니다.
핵심
결과적으로 「밭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 알려 주는 정보가 줄어듭니다. 어느 자리의 포도인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남습니다. 값이 갈리는 것은 이 두 변수 때문입니다.
원래는 한 사람의 밭이었습니다
700년 넘게 주인이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원형이 아닙니다.
이 밭을 만든 것은 시토회(Cistercian) 수도사들입니다. 부르고뉴에 있는 시토 수도원(Cîteaux Abbey)이 모원이었습니다. 기록상 최초의 기증은 1109~1115년 사이에 이뤄졌고, 그 뒤 12세기부터 14세기 초까지 기증과 매입을 통해 땅을 이어 붙였습니다. 1336년에 밭이 완성되고 담장이 둘러졌습니다. 담장 안 자리에 있던 작은 예배당을 헐고 넓혀 지금의 샤토를 세운 것은 1551년입니다.
수도사들이 남긴 것은 담장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밭의 위치에 따라 따로 발효한 뒤 섞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위쪽과 가운데 포도를 주로 쓰고, 아래쪽은 필요할 때만 넣었습니다. 건조한 해에는 아래쪽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르고뉴가 세계에 남긴 개념의 출발점입니다. 몇십 미터 단위로 땅이 달라진다는 관찰, 그리고 그 차이를 이름으로 등록해 두는 습관입니다. 부르고뉴에서는 이렇게 이름이 붙은 구획을 클리마(Climat, 끌리마로도 적습니다) 라고 부릅니다. 기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부르고뉴 포도밭의 클리마는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등재 대상은 1,247개 클리마이고, 분류는 「문화경관」입니다.
알아두기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오래 손을 대서 만든 결과물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토양이 어떻게 와인의 성격을 가르는지는 토양과 품종 편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혁명이 밭의 주인을 바꿨습니다
1789년 11월 2일, 프랑스 국민의회는 가톨릭 교회의 재산을 국유재산으로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국유화된 재산을 비앙 나시오노(biens nationaux, 국유재산) 라고 부릅니다. 목적은 이념이 아니라 재정이었습니다. 국가가 파산 직전이었고, 팔아서 메워야 했습니다.
혁명 이전 부르고뉴 포도밭의 상당 부분은 교회 아니면 귀족의 것이었습니다. 이 땅이 경매를 통해 민간에 넘어갔습니다. 시토 수도원이 뫼르소에 갖고 있던 밭은 1791년 2월 23일 15개 로트로 나뉘어 경매에 부쳐졌고, 그 가운데 10개 로트가 586우브레(약 24.4헥타르) 규모였습니다. 같은 해 3월부터 12월까지 코트 드 뉘 대부분을 포함하는 디종 관구에서 24개 로트의 포도밭이 경매됐습니다.
핵심
여기서 핵심은 「로트로 나눠 팔았다」는 점입니다. 한 덩어리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쪼개서 내놓았습니다. 부르고뉴 밭 분할의 실질적 1차 계기는 상속이 아니라 이 매각이었습니다.
다만 클로 드 부조는 예외적으로 오래 버텼습니다. 혁명기에 교회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간 뒤 1818년 쥘리앵 쥘 우브라르가 샤토와 밭을 통째로 사들였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도 세 명의 상속인 아래에서 하나의 재산으로 계속 운영됐습니다.
쪼개진 것은 1889년입니다. 상속인들이 밭을 매물로 내놓았고, 부르고뉴의 와인 상인 여섯 곳이 나눠 샀습니다. 조성된 지 700년 만에 처음으로 소유가 갈렸습니다. 그 여섯 중 레옹스 보케 한 사람이 밭의 3분의 1 가까이와 샤토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소유자는 이미 15명으로 늘어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상속과 매매가 번갈아 겹치면서 오늘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나폴레옹 민법전이 밭을 쪼갰다는 말은 어디까지 맞나요?
부르고뉴를 설명할 때 거의 반드시 나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나폴레옹 민법전이 밭을 상속인 수만큼 쪼개도록 강제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과장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아 나눠서 봐야 합니다.
확인되는 것부터 보겠습니다. 1804년 제정된 프랑스 민법전(Code civil)이 장자상속제를 폐지하고 자녀에게 균등한 몫을 보장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원칙은 나폴레옹 제국이 미친 범위를 따라 프랑스 밖으로도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 균분 원칙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부르고뉴 소유 구조를 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주의
⚠️ 「밭 하나를 상속인 수만큼 물리적으로 쪼개라」는 조문은 없습니다.
현행 프랑스 민법전 제826조는 「분할에서의 평등은 가치의 평등이다」 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 지분에 해당하는 가치를 받으면 되고, 똑같은 가치의 몫을 만들 수 없으면 차액을 돈(soulte)으로 정산합니다. 제830조는 한발 더 나아가 쪼개면 값이 떨어지는 경제적 단위는 나누지 않도록 하라고 정합니다. 법의 방향은 오히려 반대쪽입니다.
그럼 왜 현실에서는 쪼개졌을까요. 상속인이 자기 몫을 현물(en nature)로 요구할 수 있었고, 정산할 현금이 없는 농가에서는 결국 땅을 나누는 쪽으로 갔다 — 그렇게 설명되곤 합니다. 실증적으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했는지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이 부분은 통설로만 두는 편이 맞습니다.
반대 근거도 분명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 클로 드 부조가 실제로 갈라진 것은 민법전으로부터 85년 뒤인 1889년의 매각이었습니다. 상속이 아니라 거래였습니다.
- 보르도는 같은 법 아래에 있었는데도 결과가 달랐습니다. 재력 있는 가문들이 샤토를 법인으로 만들어 지분(주식)으로 보유했습니다. 지분은 토지와 달라 상속되어도 밭이 쪼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르도의 샤토는 크기를 유지했고 오히려 커진 곳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민법전은 배경 조건이었지 단독 원인이 아닙니다. 부르고뉴가 오늘의 모습이 된 것은 ① 혁명기 국유재산의 로트 단위 매각 ② 균분 상속 관행 ③ 200년간의 매매, 이 셋이 겹친 결과로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나폴레옹 탓」이라는 한 줄 설명은 편하지만 절반만 맞습니다.
프랑스 원산지 표시 제도 전반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는 AOC·AOP·IGP 편을 함께 보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도멘 · 네고시앙 · 모노폴 — 라벨의 세 단어
밭이 잘게 나뉘자 포도를 대는 사람과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갈라졌습니다. 몇 이랑밖에 없는 사람은 양조 설비를 갖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르고뉴 특유의 어휘가 생겼습니다.
| 구분 | 무슨 뜻인가 | 포도의 출처 | 라벨에서 알 수 있는 것 |
|---|---|---|---|
| 도멘(Domaine) | 자기가 가꾼 포도로만 만드는 생산자 | 소유하거나 장기 임차한 자기 밭 | 재배부터 병입까지 한 주체가 통제 |
| 네고시앙(Négociant) | 포도·과즙·완성 와인을 사들여 자기 이름으로 내는 회사 | 여러 재배자에게 매입 | 규모와 유통력. 「Maison」으로 표기하기도 함 |
| 미크로네고스(micro-négoce) | 소규모·품질 지향형 네고시앙 | 매입하되 대개 매년 같은 구획에서 | 매입이지만 밭이 고정되어 있음 |
| 모노폴(Monopole) | 한 AOC 전체를 한 소유자가 100% 가진 밭 | — | 다른 생산자의 같은 이름 와인이 존재하지 않음 |
앞의 셋과 모노폴은 축이 다릅니다. 도멘·네고시앙·미크로네고스는 「포도를 어디서 구하는가」이고, 모노폴은 「그 밭의 주인이 몇 명인가」입니다. 같이 적혀 있어도 서로 다른 정보입니다.
네고시앙을 「급이 낮은 것」으로 읽는 것은 오해입니다. 부르고뉴에는 약 115곳의 네고시앙이 있고, 이들이 가진 포도밭 면적은 전체의 8% 정도에 그치지만 판매되는 부르고뉴 와인의 절반 이상이 이들 손을 거칩니다. 최근의 미크로네고스는 구획별로 따로 양조해 도멘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모노폴은 반대로 희귀합니다. 부르고뉴 전체에서 50곳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랑 크뤼 중에서는 라 로마네 콩티(La Romanée-Conti), 라 타슈(La Tâche), 라 로마네(La Romanée), 라 그랑드 뤼(La Grande Rue), 클로 드 타르(Clos de Tart) 같은 밭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모노폴에서는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문제가 아예 생기지 않습니다. 같은 이름의 와인이 하나뿐이니 생산자를 비교할 일이 없습니다.
등급은 사람이 아니라 밭에 붙습니다
부르고뉴 등급 체계의 핵심은 한 문장입니다. 등급은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땅에 붙습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생산자가 아래 등급 밭을 갖고 있으면 그 와인은 아래 등급으로 나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 단계 | 라벨 표기 | 무엇을 가리키나 | 생산 비중(대략) |
|---|---|---|---|
| ④ 그랑 크뤼(Grand Cru) | 밭 이름만 (Chambertin) |
단일 구획. 마을 이름이 붙지 않음 | 약 1~1.5% |
| ③ 프리미에 크뤼(1er Cru) | 마을 + 1er Cru + 밭 이름 |
마을 안의 지정 구획 | 약 10% |
| ② 빌라주(Village) | 마을 이름 (Gevrey-Chambertin) |
그 마을 안에서 난 포도 | 약 38% |
| ① 레지오날(Régionale) | 지방 이름 (Bourgogne) |
부르고뉴 전역 | 약 50% |
핵심
두 병 중 한 병은 라벨에
Bourgogne라고만 적힌 와인입니다. 화제가 되는 그랑 크뤼는 백 병 중 한 병꼴입니다.
「부르고뉴는 비싸다」는 인상과 실제 구성은 이만큼 다릅니다.
개수로 보면 구조가 더 선명해집니다. 부르고뉴의 AOC는 모두 84개이고 이렇게 나뉩니다.
| 종류 | 개수 | 비고 |
|---|---|---|
| 레지오날 AOC | 7 | Bourgogne, Crémant de Bourgogne, Coteaux Bourguignons 등 |
| 빌라주 AOC | 44 | 마을 단위 |
| 그랑 크뤼 AOC | 33 | 밭 하나가 곧 AOC 하나 |
| 프리미에 크뤼 | (약 640구획) | 별도 AOC가 아님. 빌라주 AOC 안의 지정 구획 |
그랑 크뤼 개수가 자료마다 달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협회 기준으로 그랑 크뤼 AOC는 33개이고, 이 중 32개가 코트 도르(코트 드 뉘 24 + 코트 드 본 8)에, 1개가 샤블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샤블리 그랑 크뤼는 AOC 하나 안에 일곱 개의 클리마를 두는 구조입니다. 이 일곱을 따로 세면 총수가 달라집니다. 숫자를 말할 때는 「샤블리를 하나로 세는지」를 함께 밝혀야 합니다.
프리미에 크뤼가 독립 AOC가 아니라는 점도 자주 놓칩니다. 약 640개 구획이 지정되어 있고, 한 마을 안에서 여러 구획이 하나의 프리미에 크뤼 이름 아래 묶여 표기되기도 합니다.
같은 프랑스라도 등급을 붙이는 방식은 산지마다 다릅니다. 정기 재심사로 등급이 오르내리는 생테밀리옹 등급과 비교해 보면 부르고뉴 방식의 성격이 뚜렷해집니다. 부르고뉴 전반의 지리와 품종은 프랑스 와인 과정에서 순서대로 다룹니다.
그래서 라벨을 어떻게 읽으면 되나요?
지금까지의 내력이 실제 매장에서 하는 일로 바뀌면 다음 네 가지입니다.
첫째, 밭 이름과 생산자 이름을 한 쌍으로 읽습니다. 부르고뉴에서 밭 이름은 「어디서 났는가」까지만 말해 줍니다. 나머지 절반은 생산자 이름에 있습니다. 둘 중 하나만 보면 정보가 반쪽입니다.
둘째, 마을 이름 뒤에 붙은 밭 이름에 속지 않습니다. Gevrey-Chambertin은 빌라주급입니다. 그랑 크뤼인 Chambertin의 이름을 마을 전체가 나눠 쓴 것입니다. 코트 도르에는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인 마을이 여럿 있습니다. 그랑 크뤼는 마을 이름 없이 밭 이름만 적힙니다.
셋째, 「같은 밭인데 값이 다르다」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클로 드 부조에서 봤듯 밭 안의 자리와 만드는 사람이 다르면 결과가 다릅니다. 구조상 당연한 일입니다.
넷째, Monopole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비교 대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의 와인을 만드는 곳이 하나뿐이라는 표시입니다.
부르고뉴가 어렵다는 말은 정확히는 **「이름 하나가 여러 개를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800년에 걸친 기증·매입·몰수·경매·상속의 결과입니다. 라벨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소유의 역사가 복잡합니다.
이 글의 요점
- 클로 드 부조는 50.6헥타르 한 구획인데 소유자가 80명이 넘습니다. 각자 따로 양조하므로 같은 이름의 와인이 수십 가지 나옵니다. 실제 재배 면적은 약 47.3헥타르입니다.
- 이 밭은 시토회 수도사들이 1109~1115년 기증을 시작으로 조성했고, 1336년 담장을 완성한 뒤 프랑스 혁명 전까지 하나의 재산이었습니다.
- 1789년 11월 2일 교회 재산이 국유화(biens nationaux) 되어 로트 단위로 경매됐습니다. 부르고뉴 밭 분할의 실질적 1차 계기입니다.
- 클로 드 부조가 갈라진 것은 1889년, 상속인들이 여섯 곳의 와인 상인에게 매각하면서였습니다. 나폴레옹 민법전(1804)으로부터 85년 뒤의 거래였습니다.
- 「민법전이 밭을 쪼개도록 강제했다」는 설명은 절반만 맞습니다. 민법전이 장자상속을 폐지하고 균분을 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프랑스 민법 제826조는 「분할의 평등은 가치의 평등」이라 정하고 제830조는 경제적 단위를 쪼개지 말라고 합니다. 같은 법 아래 보르도는 샤토를 법인화해 규모를 지켰습니다.
- 도멘·네고시앙·미크로네고스는 포도의 출처를, 모노폴은 밭의 주인 수를 말합니다. 축이 다른 정보입니다. 네고시앙은 약 115곳이 부르고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모노폴은 전체에서 50곳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등급은 사람이 아니라 밭에 붙습니다. AOC 84개는 레지오날 7 · 빌라주 44 · 그랑 크뤼 33으로 나뉘며, 프리미에 크뤼(약 640구획)는 별도 AOC가 아닙니다. 그랑 크뤼 33개는 샤블리 그랑 크뤼를 하나로 셌을 때의 숫자입니다.
- 부르고뉴 포도밭의 클리마 1,247개는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경관)에 등재됐습니다.
만 19세 미만은 주류를 구매할 수 없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