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와인 시장 40년사 — 1987년 개방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와인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된 것은 1987년입니다. 그 전까지 수입 주류는 민간이 함부로 들여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 40년 가까이 이 시장은 세 번 크게 무너지고 세 번 다시 올라섰습니다. 무너진 시점은 매번 한국 경제가 흔들린 시점과 겹칩니다. 와인 수입액 그래프를 놓고 보면 경제 위기의 연표가 거의 그대로 보입니다.
이 글은 그 40년을 수입액 숫자로 되짚습니다. 필자는 1987년 개방 직후부터 이 업계에 있었고,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와인나라 대표이사로 일했습니다. 바깥에서 통계로만 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함께 적습니다.
숫자로 본 40년
먼저 뼈대부터 보겠습니다. 아래는 연도별 와인 수입액입니다.
| 연도 | 수입액 | 그 해에 있었던 일 |
|---|---|---|
| 1993 | 580만 달러 | |
| 1994 | 810만 달러 | |
| 1995 | 1,360만 달러 |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 |
| 1996 | 1,640만 달러 | |
| 1997 | 2,280만 달러 | 연말 IMF 구제금융 |
| 1998 | 650만 달러 | 전년 대비 약 71% 급락 |
| 1999 | 1,510만 달러 | |
| 2001 | 2,310만 달러 | 1997년 고점 회복 |
| 2006 | 6,760만 달러 | |
| 2007 | 1억 5,030만 달러 | 전년 대비 122% 급증 |
| 2008 | 1억 6,650만 달러 | 세계 금융위기 |
| 2009 | 1억 1,240만 달러 | 급락 |
| 2013 | 1억 7,180만 달러 | 2008년 고점 회복 |
| 2017 | 2억 1,004만 달러 | |
| 2018 | 2억 4,400만 달러 | |
| 2019 | 2억 5,926만 달러 | |
| 2020 | 3억 3,002만 달러 | 코로나 · 홈술 |
| 2021 | 5억 5,981만 달러 | 전년 대비 약 70% 급증 |
| 2022 | 5억 8,127만 달러 | 역대 최대 |
| 2023 | 5억 602만 달러 | 전년 대비 -14.26% |
| 2024 | 4억 6,211만 달러 | -8.63% |
| 2025 | 4억 900만 달러 | -7.48% |
출처 — 1993
2013년 및 20192021년 수치는 관세청 통계를 인용한 필자의 칼럼 「한국의 와인산업 역사를 보면 경제가 보인다」(뉴스퀘스트 「이철형의 와인인문학」, 2022). 2017년·2020년·2021년은 관세청 통계(아시아경제, 2023-01-17). 2018년·2019년은 관세청 통계(한국경제·경향신문, 2022-01-05). 2022년은 관세청 통계(전자신문, 2023-01-18). 2023~2025년은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정리한 정휘웅 「2025년 시장 요약과 2026년 한국 수입 와인 시장 전망」(와인21닷컴, 2026-01-27).⚠️ 집계 기준(HS 코드 범위·확정치 시점)에 따라 기관과 보도마다 수치가 조금씩 다릅니다. 위 표는 관세청 통계를 인용한 자료끼리 맞춘 것이며, 다른 기관 발표와 소수점 단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표에서 눈여겨볼 것은 급락한 해가 아닙니다. 급락하기 직전 몇 해입니다.
1995년에 68.2% 늘었고 2년 뒤 IMF가 왔습니다. 2007년에 122% 늘었고 1년 뒤 금융위기가 왔습니다. 2021년에 약 70% 늘었고, 2022년이 지금까지의 정점입니다.
한국에 와인이 언제부터 들어왔나요?
1987년 11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류 수입 면허가 민간에 개방됐습니다.
그 전에도 와인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산이었습니다. 1974년 해태주조의 노블와인, 1977년 5월 동양맥주(현 OB맥주)의 마주앙이 그것입니다. 당시 국세청이 술 이름에 외래어를 쓰지 못하게 해서 「마주 앉아 즐긴다」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전자신문, 2023-08-30)
개방은 시장을 만들었지만 곧바로 시장이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수입 규모는 들쭉날쭉했습니다. 팔 곳도, 마실 사람도, 설명해 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여러 수입사가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 업계에 들어온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와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와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레스토랑에 와인 리스트를 만들어 주고, 잔을 갖추게 하고, 서빙 온도를 알려주는 일이 영업의 절반이었습니다.
마주앙은 한국 최초의 와인인가요?
아닙니다. 국산 와인 기준으로 마주앙보다 앞선 것이 있습니다. 1974년 해태주조의 노블와인이 먼저 나왔고, 마주앙은 1977년 5월 출시된 국산 2호 와인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다만 한국인에게 「와인」이라는 단어를 각인시킨 것은 마주앙이었습니다. 마주앙 스페셜 화이트는 로마 교황청 승인을 받아 한국 천주교 미사주로 봉헌됐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수입이 막혀 있던 시절, 와인을 마셔 본 한국인 대부분의 첫 와인이 마주앙이었던 셈입니다.
IMF가 시장을 지웠다
1993년 580만 달러였던 수입액은 1997년 2,280만 달러까지 4년 만에 네 배가 됐습니다. 1995년 한 해에만 68.2% 늘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해입니다.
그리고 1998년, 650만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IMF 때 와인 시장은 얼마나 줄었나요?
1년 만에 약 71%가 사라졌습니다. 1997년 2,280만 달러 → 1998년 650만 달러. 시장 규모가 4년 전인 1993년보다도 작아졌습니다.
숫자로는 한 줄이지만, 현장에서는 회사가 없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와인은 달러로 사서 원화로 파는 상품입니다. 환율이 두 배가 되면 이미 창고에 들어와 있는 재고의 원가도 함께 오릅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됩니다. 게다가 와인은 선불 조건으로 수입해 몇 달 뒤에 팔리는 상품이라, 자금이 묶인 채로 위기를 맞은 곳이 많았습니다.
전 고점을 다시 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2001년에야 2,310만 달러로 1997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면허가 풀리고 사람이 몰렸다
2000년대 초,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제도입니다. 주류 수입 면허가 사실상 요건만 갖추면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완화됐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지자 수입사 수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2007년 기준 국내 와인 수입 업체는 약 300곳, 취급 와인은 약 4,000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코노미조선, 2007-09-04)
다른 하나는 문화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지나며 와인바가 늘었고, 만화 「신의 물방울」이 인기를 끌면서 와인이 하나의 유행이 됐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만 있던 와인 리스트가 일반 식당으로 내려왔습니다.
2000년만 해도 와인 수입 금액은 2,0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07년 상반기에만 6,976만 달러가 들어왔습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 이코노미조선 2007-09-04)
FTA가 판을 바꿨다
한국 와인 시장의 지도를 가장 크게 흔든 것은 유행이 아니라 관세였습니다.
칠레 와인은 왜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팔렸나요?
2004년 한-칠레 FTA 때문입니다. 관세가 사라지자 1~2만 원대라는 가격대가 만들어졌고, 그때까지 「특별한 날에 마시는 비싼 술」이던 와인이 매일 마셔도 되는 가격을 갖게 됐습니다. 숫자가 분명합니다.
| 연도 | 칠레 와인 수입액 | 점유율(금액) | 순위 |
|---|---|---|---|
| 2003 (FTA 전) | 299만 달러 | 6.5% | 5위 |
| 2004 (FTA 발효) | 800만 달러 | 13.8% | 3위 |
| 2005 | — | 17.6% | 2위 |
출처 — 한국무역협회 자료, 이코노미조선 2007-09-04
같은 기간 프랑스의 금액 점유율은 2003년 49.5%에서 2005년 36.9%로 내려갔습니다. 절반을 넘던 나라가 3분의 1로 줄어든 것입니다.
칠레 와인이 자리를 잡은 이유는 관세만이 아닙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이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에게 문턱이 낮았고, 대형 할인점이 와인 매대를 키운 것도 이 무렵입니다. 관세와 가격과 유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뒤로도 FTA는 계속 판을 바꿨습니다. 한-EU FTA는 2011년 7월 1일, 한-미 FTA는 2012년 3월 15일 발효됐습니다. 유럽과 미국 와인의 관세 부담이 순차적으로 사라지면서 가격 경쟁의 무대가 다시 넓어졌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국 소비자가 어느 나라 와인을 마시는지는 취향보다 통상 협정이 먼저 정했습니다.
대기업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2007년 수입액은 1억 5,03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2% 뛰었습니다. 시장이 뜨거워지자 대기업이 들어왔습니다.
- 트윈와인 — 2008년 1월 LG 계열로 편입 (금융감독원 공시)
- SK네트웍스 — 2008년 9월 주류 수입·판매사 WS통상 지분 100% 인수 (금융감독원 공시)
- 신세계L&B — 2008년 설립
- 롯데칠성음료 — 2009년 진출
그리고 2012년 무렵, 이 중 일부가 시장에서 물러났습니다. LG는 와인 계열사를 정리했고, SK네트웍스는 인수했던 회사를 제3자에게 매각했습니다. (더벨, 2021-07-15)
대기업은 왜 와인 사업에서 물러났나요?
자본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와인 유통이 자본으로 해결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품종 소량이라 품목 수가 금방 100종을 넘고, 선불로 사서 몇 달 뒤에 팔리니 자금 회수가 느리며, 안 팔린 물건은 그대로 재고 손실이 됩니다. 매출이 늘수록 현금이 더 묶이는 구조입니다.
와인 수입업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 항목 | 실제 |
|---|---|
| 품목 수 | 연 매출 10억 원 규모 수입사가 약 100종을 취급합니다. 품목당 연 매출 1,000만 원꼴입니다 |
| 선별 | 2000년대 초에는 100 |
| 자금 회전 | 선불 송금 → 국내 도착까지 1.5 |
| 재고 | 독점 수입권을 유지하려면 매년 일정액 이상 팔아야 합니다. 적체 재고를 떨면 그 품목 수익률이 떨어집니다 |
출처 — 이철형, 「한국에서 와인 사업하기(2)」, 뉴스퀘스트 「이철형의 와인인문학」 ⑰, 2021-05-21
다품종 소량, 긴 회수 기간, 재고가 곧 손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 규모가 커질수록 부채가 함께 커집니다. 대기업의 관리 회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업입니다. 매출은 늘어나는데 현금은 계속 나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2008년 금융위기가 겹쳤습니다. 2008년 1억 6,650만 달러였던 수입액은 2009년 1억 1,240만 달러로 떨어졌고, 전 고점을 다시 넘는 데 4년이 걸렸습니다(2013년 1억 7,180만 달러). 들어온 시점이 하필 꺾이는 시점이었던 셈입니다.
어느 회사의 판단이 옳았는지 평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시기를 겪고 나서 업계에 남은 교훈은 분명했습니다. 와인 유통은 병을 옮기는 사업이 아니라, 무엇을 들여올지 고르는 사업이라는 것입니다.
유통이 옮겨갔다
40년 동안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어디에서 마시느냐입니다.
한국 와인 소비는 어디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나요?
지금은 마트·편의점·온라인 같은 소매 채널이 압도적입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레스토랑·와인바 같은 업소 판매의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됐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서 마시는 자리가 늘면서 이 흐름이 한 번 더 굳어졌습니다.
이 변화가 시장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 업소에서 팔릴 때 | 소매에서 팔릴 때 | |
|---|---|---|
| 고르는 사람 | 소믈리에·사장 | 소비자 본인 |
| 판단 근거 | 추천·설명 | 라벨·가격·점수 |
| 가격대 | 높음 | 낮음 |
| 설명 | 사람이 함 | 아무도 안 함 |
소비자가 혼자 고르게 되면서 「설명 없이 팔리는 와인」이 유리해졌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산지, 익숙한 품종, 눈에 띄는 라벨이 그것입니다. 반대로 설명이 필요한 와인은 팔 자리를 잃었습니다.
와인소풍이 판매연대 매장과 WCR 소비자 평가를 함께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와인에게 설명할 자리를 돌려주는 일입니다.
코로나가 만든 정점
2019년 2억 5,926만 달러였던 수입액은 2020년 3억 3,002만 달러, 2021년 5억 5,981만 달러가 됐습니다. 1년 만에 약 70%가 늘었습니다.
절대 금액으로 이런 증가는 처음이었습니다. 비율로 100% 넘게 늘어난 해는 과거에도 있었지만(1999년), 그때는 급락 직후의 반등이라 규모 자체가 작았습니다. 2021년은 재작년 한 해 치 수입 규모가 통째로 더 얹힌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유는 대체로 알려진 대로입니다. 밖에서 마실 수 없게 되자 집에서 마셨고, 편의점과 온라인이 와인을 진열대 앞으로 끌어냈습니다.
2022년 5억 8,127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꺾였다
저는 2022년 3월 칼럼에서 이 시장을 이렇게 봤습니다.
과거 두 번 모두, 폭발적으로 늘어난 직후 1~3년 안에 심각한 경제 문제가 왔다. 1995년의 급증 뒤 IMF가 왔고, 2007년의 급증 뒤 금융위기가 왔다. 2021년의 급증도 같은 신호일 수 있다.
— 「한국의 와인산업 역사를 보면 경제가 보인다」, 뉴스퀘스트, 2022
그 칼럼을 쓴 해가 정점이었습니다.
| 연도 | 수입액 | 전년 대비 |
|---|---|---|
| 2022 | 5억 8,127만 달러 | +3.83% |
| 2023 | 5억 602만 달러 | -14.26% |
| 2024 | 4억 6,211만 달러 | -8.63% |
| 2025 | 4억 900만 달러 | -7.48% |
출처 —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2023~2025년은 정휘웅, 와인21닷컴 2026-01-27
3년 연속 감소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별도로 정리했습니다.
👉 한국 와인 시장,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한국 와인 수입은 언제가 가장 많았나요?
금액 기준으로 2022년(5억 8,127만 달러)이 역대 최대입니다. 그 뒤 2023·2024·2025년 3년 연속으로 줄었습니다.
다만 물량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2025년 수입 물량은 487,558헥토리터로 전년보다 5.27% 늘었습니다. 병 수는 늘었는데 금액은 줄었다 — 병당 단가가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정휘웅, 와인21닷컴 2026-01-27)
40년이 남긴 것
반복된 것
첫째, 급등 뒤에는 반드시 조정이 왔습니다. 1995년·2007년·2021년. 세 번 모두 폭발적으로 늘었고, 세 번 모두 그 직후에 꺾였습니다.
둘째, 회복에는 3~4년이 걸렸습니다. IMF 뒤 3년, 금융위기 뒤 4년. 시장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빨리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셋째, 가격이 문을 열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마주앙이, 2000년대에는 칠레 와인이, 2020년대에는 편의점 와인이 새로운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한국에서 와인 인구를 늘린 것은 언제나 비싼 와인이 아니라 싼 와인이었습니다.
달라진 것
첫째, 이번 하락은 성격이 다릅니다. IMF와 금융위기는 살 돈이 없어서 줄었습니다. 지금은 물량이 늘고 있는데 금액이 줄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싼 것을 안 사서 줄어드는 중입니다.
둘째, 마시는 술이 바뀌었습니다. 레드 와인의 물량 비중은 2020년 69.42%에서 2025년 51.49%로 내려갔고, 그 자리를 화이트가 채웠습니다(19.37% → 33.74%). 레드 와인이 곧 와인이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셋째, 설명하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채널이 소매로 옮겨가면서 와인을 골라 주던 사람의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이 시장의 가장 큰 구조적 변화라고 봅니다.
정리
1987 주류 수입 면허 민간 개방 — 시장의 시작
1998 IMF — 1년 만에 약 71% 소멸
2004 한-칠레 FTA — 데일리 와인 시대 개막
2008 금융위기 · 대기업 진입 — 회복까지 4년
2012 대기업 일부 철수 — 자본만으로는 안 되는 사업
2022 5억 8,127만 달러 — 역대 최대
2025 4억 900만 달러 — 3년 연속 감소
40년 동안 이 시장은 세 번 무너지고 두 번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세 번째 회복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 지금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 와인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나 — 그리고 왜 어려운가 →
- 와인 점수는 무엇을 재는가 →
- 처음 와인을 고를 때 →
- 루마니아 와인, 왜 지금인가 →
이 글은 한국 와인 산업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며 투자 권유나 시장 전망 자문이 아닙니다. 인용한 수치는 모두 연도와 출처를 밝혔으나, 집계 기준에 따라 기관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 19세 미만은 주류를 구매할 수 없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